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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먹는 내가 키우는 상추와 깻잎

비록 작은 정원이지만 화초만 심지 않고, 한 편은 텃밭으로 구분해 두었다.

이른 봄에 남편이 상추와 깻잎 씨를 뿌렸고, 매일 물을 주며 정성을 들인 끝에 작은 싹이 당당히 땅을 밀어 올렸다.


딸들 유치원생 시절에 화분에 콩을 심어서 싹이 나오는 과정을 초초하게 관찰한 적이 있는데, 아침마다 허리를 굽히고 눈을 크게 떠서 씨앗 심은 땅을 살피는 남편의 모습이 딱 그때의 딸의 모습 같았다.


남편도, 나도,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채소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서 먹는 줄만 알았지, 직접 키워서 먹는 식재료라고 생각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비록 작은 땅에서 자라는 몇 개 안 되는 상추와 깻잎이지만, 그 푸성귀는 먹는 식재료를 넘어선 우리에게는 신기한 생명체였다.


두 손가락으로 집으면 손톱에 낄 정도로 작은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더니 물만 줘도 싹을 내고, 햇볕을 받고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우는 모습은 도시촌놈 우리 눈에는 우주의 작은 질서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눈만 뜨면 싹이 텄는지, 잎은 몇 개나 났는지, 키는 얼마나 컸는지, 관찰하는 우리 눈에 그 상추와 깻잎은 화초와는 또 다른 기르는 재미와 보람이 있었다.


씨앗을 심은지 두어 달이 되었다.

하루 종일 볕아래인 밭이 아니라, 작은 정원 귀퉁이 땅에서 다른 나무들에 해가 가리는 시간이 있어서 생각만큼 빠르게 자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 때 싹을 틔워서 나름 상추와 깻잎의 모양을 한 초록잎이 커가고 있다.

수런수런 모여 앉은 깻잎과 상추 싹은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직 한 번도 밥상에 오른 적은 없는 정원의 상추와 깻잎은 날마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이미 쌈도 싸고, 비빔밥에도 섞여서 우리 입에 들어간 듯해서 여러 번 맛을 본 듯하다.

눈으로 먹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다.


씨앗을 틔워서 싹을 내고, 잎을 키워서 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그 기다리는 시간만으로도, 매일 아침 새싹의 상태를 살피는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생전 처음 해보는 우리의 채소 기르기는 이미 기대를 품은 행복이 밥상 위에 가득하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분들이 보면 무슨 소꿉장난인가 하겠지만, 작은 정원 한 귀퉁이의 상추와 깻잎은 입으로 먹어보기도 전에 이미 눈으로 먹고 있고, 마음으로 그 맛을 음미하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맛있는데, 우리 밥상에 오를 그 첫날의 상추와 깻잎은 귀하고 귀해서 입 안에 들어가질까 싶다.


예순이 다 된, 예순을 막 넘긴 나와 남편은 귀엽게 돋아난 상추와 깻잎의 작은 싹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생명의 우주를 잔잔히 경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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