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인생 최대 위기?!
우리 아이들은 사실 태어나서 한 번도 전학을 가본 적이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줄곧 한 집에서 살았던 데다가 집에서 3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래서 첫째는 코로나가 한참이던 2020년 첫 입학한 뒤로 계속 같은 학교를 다녔다.
학교도 한 학년에 3개 반 밖에 없는 조그마한 학교였다. 그래서 말만 다른 반이지 학년을 거듭하면 결국 전 학년이 다 친구가 되는 아주 오손도손 알콩달콩한 학교였다. 학생수도 한 학년에 60명 밖에 안되는 데다가 활발한 성격 덕분에 교내 오케스트라 활동, 체육 활동 등에서 늘 자존감을 높이며 즐거운 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둘째는 겨우 3학년인 데다가 남자아이라 크게 학교 자체에 개의치 않아 하는 성격이라 무던하게 다녔다.
그러던 첫째에게 캐나다의 학교 생활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첫째에게는 연령차이로 인해 늘 자기보다 늦으니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둘째에게서 얻는 근자감이 있어서 그나마 걱정은 덜했다. 한 번도 전학을 해본 적도 없고, 조그만 학교에서 친구들이 없었던 첫째는 "내가 첫날 친구 한 명은 사귈 수 있어!"라고 의기양양했지만 엄마 마음은 새가슴이었다.
캐나다의 새 학년은 9월 3일에 시작했다. 9월 첫째 주 월요일은 Labor Day, 즉 노동절이기 때문에 하루 늦은 화요일에 시작한다.
아침 6시,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전 날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점심 메뉴를 생각하며 바쁘게 김밥 세 줄을 말았다. '한국인이니 한국스러운 도시락을 싸주겠어!!' 하는 그런 마음보다는 그냥 낯선 이곳에서 엄마 마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메뉴일 거라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김밥을 도시락에 넣고, 과일 한 조각과 간단한 과자를 넣어 간식박스도 준비했다. 물도 한 병 챙겼다.
7시가 조금 넘어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차려주고 나도 덩달아 마음이 분주해졌다.
학교는 8시 55분에서 9시 10분 사이에 등교해야 한다. 한국의 초등학교와 다르게 아무 시간이든 등교시간까지 학교에 들어가면 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 15분 동안 등교를 해서 학교 마당에 모여서 놀다가 종일 울리면 다 같이 교실로 들어간다. 누구도 먼저 들어갈 수 없다. 아이들이 가게 된 학교는 첫날엔 학교 마당을 개방하여 보호자가 아이들을 학교에 들여보내고 선생님과 인사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했다.
전 날 함께 걸어서 가본 학교는 천천히 걸으면 10분쯤 걸리는, 500미터쯤 떨어져 있는 학교다. 아이들과 함께 8시 50분이 조금 못되어 집에서 나섰다. 너무 빨리도, 너무 늦게도 도착하지 않기 위한 나의 철저한 계산이었다. 날씨는 푸르고, 하늘은 높고, 동네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의 말소리가 가득했다.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가방을 등에 꼭 붙이고 아이들은 김광석 피아니스트의 '학교 가는 길'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귀엽다.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학교 가는 아이들은.
학교에 도착해서는 함께 학교 마당으로 들어갔다. 이미 먼저 온 아이들은 반별로 줄을 서 있었다. 아이들이 가게 될 반은 개학 첫날 마당에 이름과 함께 게시해 놓는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의 스타일마다 다른데 어떤 선생님은 의자 하나를 가지고 나와서 큰 종이에 선생님 성함과 소속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서 의자에 붙여 놓았고, 어떤 선생님은 그 종이를 아스팔트 바닥 위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괴어 놓기도 했다. 또 어떤 선생님은 그냥 본인이 명단이 적인 A4종이를 들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은 어떤 스타일까?
첫째의 선생님은 의자에 명단이 적힌 큰 종이를 붙여 놓는 스타일, 둘째의 선생님은 본인이 명단을 들고 있는 스타일이었다. 명단을 쓱 보니 첫째의 반에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고, 둘째의 반에는 2명이 더 있었다. 첫째는 6학년으로만 이루어진 반이었고, 둘째는 4학년과 5학년이 섞여있는 혼합반이었다.
오타와가 속해있는 온타리오 주는 캐나다의 수도가 있기도 하고 퀘벡주와도 가깝기 때문에 영어와 불어를 모두 사용하고, 불어를 모든 학교에서 가르친다. 교육청도 영어교육청, 영어가톨릭 교육청, 프랑스어 교육청, 프랑스 가톨릭 교육청 이렇게 4개가 존재할 정도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가톨릭 영어 교육청 소속의 학교이며, 아이들은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french core 반으로 넣었다. french core는 프랑스어 20%, 영어 80%로 전체 수업이 이루어지며, 또 다른 코스인 french immersion은 50:50의 비율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한 과목을 영어 불어로 비율을 나누어 수업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과목 수가 달라지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4, 5학년이 섞여 있는 둘째 반의 경우 오전에 학년 상관없이 듣는 french 수업, family 수업 등을 듣고 점심 이후에는 학년별로 나눠져서 수학이나, 사회 등의 과목을 듣는 시스템이라 혼합반이어도 괜찮다. 의외로 학교마다 혼합반인 경우가 많아서 불안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들과도 간단히 인사를 했다. 우리는 새로 온 가족이며 한국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니 캐나다가 좋은지, 적응은 잘하는지 등의 스몰토크를 간단히 주고받았다.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친절함도 함께.
9시 10분 종이 울리고 아이들 모두 선생님을 따라 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른 부모님들을 따라 눈치껏 학교를 빠져나왔다. 어색해하는 첫째와 둘째의 뒷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학교에서 보내준 안내문에 나와있는 대로, "wish them well and allow them to begin building their friendship with their new classmates and educators." 해야지.
그런데 사실, 외출할 기회가 있어서 아이들 오전 바깥놀이 시간에 학교 근처를 슬쩍 가보았다. 혹시나 들킬까 봐 차에 탄 채로 학교 놀이터와 운동장을 보았는데 내 눈에 너무 잘 보이는 우리 아이들! 새 학기 첫날부터 친구에게 둘러싸여 있을 거라 예상한 건 아니었는데도 아직 같은 반에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둘이서 서성거리는 걸 보니 캐나다로 아이들을 옮겨 심은 게 과연 잘한 건가 하는 엄마의 조바심이 마음에 가득 불어왔다.
내가 더 단단해져야, 아이들이 나를 지지대 삼아 서겠지.
스스로의 다짐을 나에게 몇 번이고 하며 못 본 척 얼른 돌아 나왔다.
3시 30분, 학교 마치는 시간이 되어서 아이들 학교 앞으로 나가보았다.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들로 가득하다. 여기 캐나다는 아이들이 웬만큼 크기 전까지는 혼자 등하교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고 유동적인 근무 환경을 가진 직장도 많아서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저학년의 경우엔 부모님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아예 학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그런 부모님 틈에서 고개를 쭉 빼고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친구들과 함께 줄지어 걸어 나오는 둘째, 그리고 조금 텀을 두어 걸어 나오는 첫째가 보였다. 손을 힘차게 흔들어 주니 이내 나에게 달려온다.
"재밌었어?"
쉬는 시간의 장면을 못 봤다는 듯, 애써 밝게 물어본다. 두근두근 답을 기다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곧 뒤따르는 아이들의 대답이 밝다.
"응, 나 친구 여섯 명이나 사귀었어." (첫째)
"나도 친구 한 명하고 이야기했어." (둘째)
역시 아이들은 나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