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보다 한국이 좋은 이유 No. 1

스트리트 런치박스 파이터

by 시리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숏츠에 "캐나다 보다 한국이 좋은 이유 No. 1"이나 "내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이유" 등을 클릭하면 빠지지 않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런치박스". 80년대 생인 나에게는 학교에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게 익숙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도시락을 싼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남일처럼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세 가지 반찬에 밥과 국까지 있는, 솔직히 집에서 내가 차려주는 것보다 더 균형 잡힌 식사를 늘 교육기관에서 챙겨주었다. 바로 "급식"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캐나다에는 급식이 없다. 어린이집 격인 데이케어 센터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아예 없다. 캐나다에 급식이 없는 이유를 몇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알레르기 문제라고 들었다. 자연환경이 깨끗하기로 소문난 캐나다라서 그런지 사람들에게는 각종 알레르기가 있다. 견과류는 당연하고 글루텐, 심지어 당근까지. 이렇게 알레르기도 많고 인종도 다양해 먹는 음식, 먹지 않는 음식이 너무 천차만별이라 일률적인 급식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물론 급식을 한다 해도 샌드위치, 감자튀김, 햄버거 같은 거겠지만.


캐나다에 오기 전부터 나는 익히 캐나다엔 급식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잔뜩 긴장했다. 한국에서 늘 소풍 때만 반짝하고 활약하던 3단 도시락통도 캐리어에 넣어 꼼꼼히 챙겨 온 터였다. 한국에서는 소풍 때만 도시락을 싸서 그런지 소풍도시락이 일종의 엄마들 손재주 뽐내는 날 처럼 되어가고 있어서 여기서도 그래야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첫 등교가 시작되던 그날부터는 새벽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챙겼다. 점심 도시락뿐만 아니라 오전, 오후 쉬는 시간 (recess)에 먹을 간식도 챙겨야 했다. 한국에서 내가 도시락을 싼다면 소풍 때라 늘 김밥이었다. 하지만 맨날 김밥을 쌀 수는 없는 노릇이고 냄새가 심한 음식이나 견과류는 또 아예 가져갈 수 없으니 다양한 걸 고려해야 했다.


초창기 도시락 사진들 : 나름 뿌듯해 사진도 엄청 찍었었는데...


첫 주엔 김밥, 핫도그, 샌드위치, 김치볶음밥 등을 골고루 싸주고 나름 도시락 통에 예쁘게 담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뚜껑을 열었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유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은 엄청 신경을 써서 담아냈다. 그렇게 만드니 완성하고 나면 뿌듯해서 꾸준히 사진도 찍었었다.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들이 조금 지칠 때쯤 학교에서는 나름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날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 일주일에 두 번 "subway day"와 "pizza day"가 있다. 이날 돈을 내고 신청을 하면 신청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나 피자를 주는 날이다. 즉, 도시락을 안 싸가도 된다는 말씀!! 일주일에 이틀은 좀 그런 거 같아서 피자만 얼른 신청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 도시락 싸기에서 네 번으로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날개를 단 듯 홀가분했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한두 달쯤 지났을 때 솔직히 도시락 레퍼토리도 떨어지고 힘이 좀 빠지기 시작해서 고객님들에게 피드백을 받기로 했다.


" 다른 친구들은 뭐 싸 오는지 몰라. 자기 자리에서 그냥 먹고, 빨리 먹고 나가 놀아서 다른 애들 뭐 먹는지 볼 틈이 없어."

" 엄마, 도시락 조금만 싸줘도 돼. 다 먹을 시간이 없어. 간식도 조금만 싸줘."


생각보다 도시락에 힘을 줄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가만 보아하니 알레르기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눠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고, 도시락 통 하나에 과일, 야채, 샌드위치 등을 다 싸와서 틈틈이 열어서 조금 꺼내먹고 뚜껑을 닫아 놨다가 또 먹기도 하는 것 같았다.


자기가 알아서,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것. 오전 쉬는 시간에 점심 도시락까지 다 먹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밥을 안 먹고 나가 놀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자율적 식사였다. 내가 뭘 싸 오든 내가 먹는 것이고, 그러니 다른 사람의 도시락에도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엄마로서 어쩌면 그동안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못해 소풍 도시락을 싸줄 때에도 우리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 도시락을 보는 다른 사람을 신경 써 왔던 게 아닐까?


그때부터 도시락에 조금씩 힘을 뺐다. 예쁘게 담는 것도 관두고 쉽게 꺼내먹을 수 있게, 간단하게, 배가 고프지 않도록 도시락을 "빨리" 싸는 스킬도 단련했다. 예전엔 도시락을 싸기 위해 6시에 시작했던 일과가 30분씩, 심하면 한 시간이 늦어져도 거뜬히 도시락을 쌀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후기 도시락은 좀 더 간단해 졌다. 그나마 12월 이후엔 사진도 안 찍었다는...


그렇게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중간중간 한 두 주의 방학을 빼면 10개월의 시간,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도시락을 쌌다. 잔뜩 힘이 들어간 도시락이든, 간단해진 후든 늘 한결같이 아이들이 밥 먹을 때 도시락에서 엄마 마음을 느꼈으면 하는 사랑을 담았다.


이쯤 되면 스트리트 런치박스 파이터가 아닐까.





물론, 그래도 올해 9월부터는 한국으로 돌아가니 매일 도시락 안 싸도 돼서 솔직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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