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제일 처음에 how are you? 가 나오는 이유
한국에서 영어회화를 처음 배울 때 어느 교재든 가장 먼저 나오는 표현이 있다.
"hello" 또는 "Hi."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다음에 늘 따라오는 구절은 바로 이 것.
"How are you?"
"Fine, thanks. And you?"
너무나 획일적으로 반복되는 이 표현은 오히려 영어 회화의 물정을 모르는 "교과서 회화"로 전락하여 개그 소재에서도 희화화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캐나다에 와보니 이 표현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나 또한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현지에 생활하시는 분들을 마주치게 된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살 때도, 학교 마칠 때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교문 앞에서 선생님과도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Hi, how are you?"였다.
게임에서 등장인물이 NPC를 만나면 하는 이야기처럼, 누구나 나와 눈이 마주친 분들은 누구나 말한다. 하이, 하우 아유라고.
이다음부터가 중요하다. 대화 창에서 선택지를 잘 선택해야 다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망설이거나, 주저하면 대화는 거기서 종료된다. 이 대화가 별 이벤트 없이 끝날 수도 있고, 큰 이벤트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냥 가게 직원과의 대화라면 잘 계산하고 끝나는 엔딩이고, 아이 친구의 부모님이라면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따라 플레이 데이트(친구와 노는 모임)를 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이 단순한 대화가 엄청나게 중요했다. 물론 fine thanks and you? 말고 I'm okay 또는 good 등 다양한 표현도 번갈아 가며 사용했지만 정말 바쁜 달러라마(우리나라의 다이소 격)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과 안부를 서로 물어 주었다.
물론, 함정은 있다. 그들이 내 안부를 물을 때, 나는 그냥 괜찮아야 한다. 별로다, 아프다 등을 말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그들이 나와 어느 정도 친한 게 아니라면 전혀 내 상태가 궁금하지 않으니까.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를 가고 난 후 도서관에서 하는 영어회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리드로 이루어지는 영어회화 그룹에서 늘 빠지지 않는 주제가 '스몰토크 하는 법'이었다. 그때마다 늘 빠지지 않고 말씀하시는 게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면 부정적인 말이나 뉘앙스가 담긴 말은 하지 마세요."였다. 설사 그게 살짝 농담이었다고 해도.
궁금하지는 않지만 안부를 물어주는 사회.
그게 캐나다였다.
이 표현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아무래도 thank you이다.
how are you로 대화를 시작했다면 대화의 마무리는 thank you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하게 될 때도 있고, 반대로 내가 들을 때도 있다.
아시안으로서 아직도 가끔 멋쩍어하는 앞사람이 문을 잡아주는 문화부터, 산책을 하다가 강아지랑 내가 편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주는 분들,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길 건너는 걸 도와주시는 크로싱가드(crossing guard) 분들까지. 그럴 땐 thank you가 자동으로 나와야 한다.
캐나다에 온 초반엔 늘 내가 thank you를 말하는 입장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상대 쪽에서 하는 반응을 들을 수 있다. 영어 회화 교재에서는 주로 you're welcome, it's my pleasure를 많이 가르쳐주는데 실제로 그 말을 가장 쓰기도 한다.
우리말도 그렇겠지만 영어 역시 젊은 친구들은 늘 새로운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한 번은 도서관 회화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가는데 앞에 있던 젊은 친구가 문을 잡아줘서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그 친구는 웃으면서 'no worries'라고 하는데 표현이 너무 신선해서, 역시 젊은이들은 다르구먼! 하고 생각했다. 가끔 이렇게 대화라고 하기엔 민망한 짧은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면 눈이 반짝! 하기도 하는 건 직업병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아침에 출근해서 인사하면 마칠 때까지 크게 인사할 일이 없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봐도 계산해 주시는 분과 별 다르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쁜데 이야기를 안 거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캐나다는 달랐다. 코스트코에서 내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도, 계산하는 분들은 꼭 나에게 안부를 묻고, 가끔은 날씨 이야기, 내가 산 물건을 스캔하면서 이거 맛있더라, 나도 샀다 등의 정말로 '스몰 토크'를 쉴 새 없이 해준다. 나와 함께 서 있는 이 시간은 자신과 나의 것이라 생각하고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준다.
그 마음이 좋았다.
궁금하지는 않아도 안부를 물어주고, 고마울 땐 고맙다고, 또 좋은 하루 보내라고 행운도 빌어준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더 친절할 수 있다는 것.
그 인사 하나로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
그 기분은 썩 괜찮았다.
수많은 인사를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한국의 영어 회화 교재는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