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cy

누군가의 추억을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

by 시리


내가 다니는 교회는 캐나다의 한국 교민들이 터를 일구고 48년간 지켜온 '한인 교회'다. 오타와 지역에 한인이 천명도 되지 않던 48년 전 소수의 분들이 모여 예배 모임을 시작했고, 그 후 지금 교회 건물을 처음에는 세입자로, 그 후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회 건물은 백 년도 넘은, 비록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 압도적인 위엄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지금 교회가 자리 잡은 지 48년, 그리고 교회는 건물의 낙후 문제와 공간의 협소함으로 새로운 지역으로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려는 중이다. 얼마 전 목사님께서 현재 사용하는 건물은 내년 3월까지만 사용하게 되고, 교회는 임시 예배장소로 옮길 것이며, 이 교회 건물을 포함한 부지는 부동산을 개발하는 다른 업체가 이미 사서, 아마 콘도(한국의 아파트 느낌)를 지을 예정일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이 교회 이야기를 왜 할까? 이 것은 교회가 새 건물로 이사 가서 좋다는 찬양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 건물로 옮기고 나면 그 후에 남겨지는 것들, 혹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위에서 장황하게 여러 숫자를 이야기했다. 다시 정리해 보자. 이 건물은 처음부터 교회 건물로 지어진 것이었고 백 년이 넘은 건물이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우리 교회는 48년 되었다. 셈이 빠른 사람들은 계산을 끝냈을 것이다. 우리 교회가 지금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이 건물은 또 누군가의 교회였다. 5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이프 오르간이 위용을 자랑하고 (물론 사용하지는 않지만), 벽마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으며 천장이 아주 높은 고풍스러운 이 건물은 늘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지고,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가득 채우던 교회였다. 우리보다 앞서 그 건물에서 찬양드리던 사람들에게 그 건물은 낡은 파이프 오르간이 아니라 소리 나는 웅장한 오르간이었고, 낡고 오래된 전등은 예배를 위한 불을 환히 밝혀주던 새로운 조명이었고, 새롭게 스테인드 글라스를 달던 그때의 감동이 마음 깊게 내려앉아있는 교회였다. 우리 교회에게도 48년이라는 아주 긴 세월이 있지만, 그 이전 50여 년의 기억도, 추억도, 흔적도 모두 이 건물을 간직하고 있다. 교회 건물이 헐어지고, 이제는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 교회에게도 추억이 하나 사라지기에 아쉬운 일이지만, 그 이전 교회의 추억이 있는 그 누군가에도 또한 아쉬운 일일 것이다.


오늘 교회에는 특히 하얀 머리카락의 현지인 분들이 많이 오셨다. 한인 교회이기에 평소 한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간혹 그들의 가족인 현지인 분들이 한 두 분씩 오시는 정도다. 하지만 오늘은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현지인 분들, 특히 나이 지극하신 노년의 현지인 분들이 많이 오셔서 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궁금함도 잠시, 예배가 시작되자 목사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는 우리 교회가 있기 전, 이 건물에서 예배드렸던 OO교회의 성도분들께서 함께 하셨다'라고 소개해 주시면서 의문이 풀렸다. 왜 오늘 현지인 분들이 많으신지, 그것도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많으셨는지. 그리고 오늘 특별히 그분들께서 핸드벨로 'Amazing Grace'를 연주해 주셨다. 연주를 마친 후 오늘 함께 한 OO교회 성도분들을 대신하여 피비 할머니께서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그분의 말은 그러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건물이 이제 사라진다는 것은 저희에게도 추억이 깃든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이기에 아쉽고 슬픕니다. 하지만 이 건물에서 드리는 이 예배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초대해 추억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랬다. 지금은 이 건물을 떠나 다른 곳에서 그때와 또 다른 교회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분들의 오랜 추억의 여러 페이지에는 이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어 교회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전해주셨다. 어릴 때 성가대 연습실과 주일학교가 있는 지하가 너무 으스스해서 핼러윈에 거기를 장식해 놓으면 정말 무서웠다는 이야기, 호기심이 많았던 자신에게 파이프 오르간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직접 보여주시며 알려주셨던 성가대 선생님의 친절함, 교회 마당에서 칠면조와 셰퍼드 파이를 만들던 교회 어르신들이 근처에서 놀고 있던 자신을 불러 칠면조 샌드위치를 나눠주셨던 따스한 기억. 또한 여기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기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장례식도 치렀던 그 모든 인생의 페이지에는 이 교회가 있었다. 비록 48년 전 이 건물은 떠났지만, 머리가 하얀 노년의 삶이 되었지만 젊은 날의 그 추억은, 그 기억은 나이 들지 않고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그저 헌 건물을 팔고, 새 건물로 이사하는 게 아니었다. 그 헌 건물은 이제 존재가 사라질 것이고, 그 건물에 추억이 있는 모든 이들의 한편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같은 교회도 아니고, 이미 그 건물은 지금 우리 교회로 소유주가 바뀌었고 그 건물을 파는 것에 이전 교회 분들의 동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백 년도 넘은 건물의 우리가 모르는 50여 년의 추억만큼의 책무가 우리 교회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우리 교회의 이전에 대해 그분들께 이야기하고, 이 건물이 사라지기 전 한번 초대하여 서로의 추억을 나누고, 그들의 기억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그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아름다운 핸드벨 연주와, 누가 들어도 따뜻한 교회와 관련된 추억을 들려주셨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우리 교회를 축복해 주셨다. 따뜻한 마음은 더 큰 축복으로 되돌아온다.


오늘 대표 기도 중에 장로님께서 'legacy'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선대로부터 후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산. 오늘에서 비로소 나는 'legacy'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 같다. 누군가의 추억을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물리적인, 눈에 보이는 유산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 값어치를 다 했다고 해서 사라질 리도 없는 것. 백여 년 동안 한 건물에서 예배드렸던 서로 다른 인종과,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쌓아 올린 그 추억과 그 살아있었음의 증거가 진정한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내 건물이고 나의 것이기에 그전 주인에게 소소히 알릴 의무는 없더라도 그들의 추억과 그들의 역사를 존중해 주는 것. 그들을 초대하여 함께 그 아쉬움을 나누고 서로 축복해 주는 것. 그것이 과거의 유산을 새로운 형태로 가공하여 후대에게 전해주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진정한 유산이다.

우리 교회에 있는 고풍스러운 아주 오래된 스테인드 글라스는 건물이 헐어지면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스테인드 글라스를 볼 때마다 예쁘다고 생각해 아쉬웠던 나였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그중의 한쌍은 오늘 함께해 주신 OO교회에 선물로 기증을 하고, 나머지는 새로 옮겨가는 교회에 가져갈 예정이라고 하셨다. 진정한 유산은 이런 것이다. 오래된 것을 없애버리고 새롭고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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