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만져도 되나요?

그제도, 어제도 묻고 또 묻는 캐나다 아이들

by 시리

캐나다까지 우여곡절 끝에 데려온 우리 집 감자는 이제 우리 동네의 인기견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처럼 원하는 품종을 ‘골라서’ 키우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 밈에서 자주 등장하고, 특유의 귀여운 엉덩이로 사랑받는 웰시코기를 실제로 보는 일은 드물다. 내가 살던 한국 동네만 해도 산책길에 마주쳐 이름을 안 웰시코기만 열 마리가 넘었지만, 이 넓은 캐나다 동네에서는 지금까지 단 두 마리만 마주쳤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늘 감자가 지나가면 따스한 시선들, 귀여워하는 눈빛들이 함께 따라온다.


감자는 하루 두 번 산책을 나간다. 아침엔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갈 때, 오후엔 하교 시간에 마중 나갈 때. 산책길에서 감자를 발견한 동네 아이들의 눈빛은 언제나 반짝인다.


특히 하교 시간에는 그 인기가 절정에 달한다. 이곳 학교는 전 학년이 같은 시간에 마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그때마다 감자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아이들이 빠지지 않고 묻는 말이 있다. 늘 똑같이, 언제나 예의 바르게.


“Can I pat him?” (강아지 만져도 돼요?)


질문은 정해져 있고, 우리의 대답도 늘 같다. “Sure.”


감자와의 일상이 익숙해지고, 그를 만지고 싶어 하는 단골손님들이 생겨날 무렵, 나는 흥미로운 점 하나를 깨달았다. 어제도, 그제도 감자를 쓰다듬었던 아이들이, 매번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 심지어 둘째의 절친한 친구조차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묻는다. 강아지를 만져도 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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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서양의 양육 문화를 '자유롭다' 혹은 '훈육을 덜한다'라고 단순화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한국의 양육 방식은 모든 영역에 걸쳐 좋게 말하면 자세하고, 다르게 표현하면 잔소리가 많다. 아이의 외모, 옷차림, 행동 하나하나에 부모는 입을 댄다.


반면 캐나다에 와서 보니 훈육에 대한 평가가 전적으로 맞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곳은 아이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만큼, 사소한 잔소리는 적은 편이다. 예컨대 "옷 좀 똑바로 입어라", "머리 좀 잘라라" 같은 말은 잘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규범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은 여기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등하교 길에는 반드시 등하교 도우미(Crossing Guard)에게 인사하도록 하거나, 식당에서는 조용히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는 친구 부모님께 먼저 물어보고 미리 약속을 잡은 후 정해진 시간만큼만 놀 수 있다는 식이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선’을 분명히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강아지를 만지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몇 번 마주친 강아지라면 어느새 ‘우리 동네 강아지’처럼 느껴져 주인의 허락 없이 쓰다듬는 경우도 많다. 처음 보는 강아지임에도 불쑥 다가가 “귀엽다”며 손부터 뻗는 일도 흔하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아무리 자주 보는 강아지라도 반드시 허락을 구한다. 알고 지내는 사이여도, 매번 정중히 묻는다. 타인의 것이니까, 그리고 그 경계를 지켜야 한다는 걸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훈육 방식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문화가 다르기에 어느 한쪽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은 해볼 수 있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안전’과 '성공'을 중심에 두고 훈육을 한다. 하지만 그 안전과 성공도 결국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태도와 예의를 가르치는 것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안전하게 길 잘 건너"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시는 “도우미 선생님께 인사하고 지나가”라고 알려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가게 문을 나서며 “문에 손 끼지 않게 조심해”라는 말에 “뒤따라오는 사람 위해 문 좀 잡아줘”를 덧붙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타인을 배려하는 예의일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늘 선을 지키고, 늘 허락을 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유로운 듯 보여도, 그 안에는 명확한 경계와 배려가 존재하는 사회. 그런 배려는 아마도,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되는 작고 조심스러운 질문 하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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