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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29. 사는 게 다 고만고만

by Noelle

나는 내 나름대로 고유한 방식으로 사는 것 같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하다.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술을 줄이고, 운동은 늘리고, 월급과 대출 이자 사이, 카드 값을 떼고 야트막하게 남는 여유분을 S&P500에 넣으면서 살 배짱은 없는 2X, 3X레버리지 상품들을 괜히 눈여겨본다. 부모님 건강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고, 네이버 카페에서 각종 할인 정보를 그러모아 최대한 저렴하게 맛있는 술을 사서 한 잔 한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하게 살고 있다보니 만나면 늘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을 하며 한참 웃고 떠들다 집에 온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나와 내 친구들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최근 나는 한 뉴스레터 플랫폼에서 3040 여성 소비자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내가 요즘 사는 방식이 이렇게 범지구적인 트렌드였나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들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글에 소개된 3040처럼 나는 여전히 20대처럼 입지만 20대보다는 원단에 조금 더 신경을 쓴 브랜드를 소비하고, 29cm나 W컨셉 같은 플랫폼을 애용한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며,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한다. 이 뉴스레터는 3040 여성을 기혼 (+출산)과 미혼으로 분류해 놓았는데, 나는 정확히 그 두 사이 중간 지점쯤에 위치해 있는 점도 재밌었다. 기혼이지만 아이는 없는 중간 지대에서 나는 두 트렌드를 거의 정확히 반반 따라가고 있었다.


거의 내 사생활을 염탐해 써놓은 듯한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기도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특색 없이 살고 있었나 싶은 마음에 약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특정 연령대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점점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자연스레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이) 마케터들의 고도화된 농간에 놀아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있다. 나도 인스타그램을 보며 뭔가를 홀린 듯 구매하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게 되기도 하니까.


그러고보면 우리는 SNS를 통해 트렌드를 함께 소비한다. 운동을 예로 들면 코로나 시절 골프, 이후 테니스로 이어지던 유행이 이제는 러닝으로 번져나간 모양새다. 작년 중순 즈음부터 내 지인들의 인스타 스토리에는 러닝 인증 사진들이 간간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슥슥 넘기다 보면 나이키 러닝 앱이나 애플 피트니스에서 캡쳐한 화면, 스마트 워치 인증 사진이 종종 보인다. 몇 년 전부터 러닝을 꾸준히 해오던 남편은 사실 이 갑작스러운 유행이 조금 불편하다. 러닝 하러 한강공원이나 구민운동장에 가면 러닝크루들이 무리지어 뛰어 통행을 방해하기도 하고, 마라톤 신청이 콘서트 티켓팅만큼 치열해져서 웬만한 마라톤은 이제 신청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좋은 점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면서 한강공원이나 각종 운동장들의 시설이 잘 유지되고, 늦은 시간에 뛸 때 보는 눈이 많아져 더 안전해진 것 같다. 러닝 관련 행사가 늘어나고, 예전엔 한국에 들어오지 않던 러닝 브랜드도 한국 진출을 확정한다. 이래저래 따져보면, 내가 사는 방식이 특별하지 않아서 조금 슬플지는 몰라도 이런 유행이 있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많기에 내가 누리는 편안함도 분명히 있다. 뭐 대단히 특별하게 살아야 되나, 내가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다같이 재밌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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