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90) 강의하는 변호사
#1
2003년 후반기 파트너로 승급한 이후 나는 사건 수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물론 ‘태평양’이라는 이름값을 보고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도 있지만 그래도 개별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의뢰인을 개척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파트너의 경우는 사건을 얼마나 수임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이기도 했다.
주니어 때는 의뢰인과 식사를 하는 경우도 제한적이었다. 주로 파트너가 그 부분을 담당했고, 주니어는 열심히 서면작업만 했디. 그런데 파트너가 되고 나니 태평양 집행부에서는 ‘안에서 동료들과 밥 먹지 말라. 바깥에 나가서 의뢰인과 밥 먹으라’라고 독려했다. 동기들은 부랴부랴 골프를 배우기도 했다. 본격적인 영업의 시작이다.
#2
나는 비쥬얼과 달리 술을 잘 못한다. 한 잔만 마셔도 빨개진다. 골프도 칠 줄 몰랐다. 썩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하는 식사자리도 좀 어색해 한다. 내가 INFP여서 그런가 보다. 극도의 I다.
내게 영업적인 성과를 가져다 준 비결은 전적으로 ‘강의’였다.
1992년 신림동에서 고시생 대상 강의로 시작된 내 강사 인생은 2000년 로앤비에서의 기업법무 강의로 이어졌다. 2003년 태평양에 복귀한 이후에도 로앤비 강의는 계속 나갔었다. 보통 한 달에 2번 강의를 하면 새로운 ‘예비’ 의뢰인 30-40명을 만날 수 있다. 강의라는 게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이 중요하지만 사실상 ‘내 자랑’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승소했던 사건들, 기막힌 반전 논리를 개발했던 순간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하면 그 자체로 자연스런 내 홍보가 된다.
#3
2005년부터는 로앤비 강의 외에 각 기업체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로앤비에서 강의를 들었던 법무팀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법률 강의를 듣게 하고 싶다는 요청들이 많았다.
법무팀에 대한 강의기법과 법에 문외한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기법은 서로 달라야 했다. 사실 기업에서 ‘사고를 치는’ 부서는 법무팀이 아니라 현업이다. 따라서 현업 차원에서 알아야 할 각종 법무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널리 소개했다.
현업 대상 강의는 협박기법을 주로 썼다. ‘그냥 용감하게 일 진행했다가는 어떤 일이 터질 수 있는지’를 생생한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그럴 때면 ‘아... 나도 저렇게 영업하는데...’라며 걱정을 하는 눈빛을 하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변호사님, 이번 강의를 통해 현업에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법무팀 말을 잘 듣겠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경각심을 심어주셔서. 그리고 무엇보다 법률강의라 지루할 줄 알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 법률강의를 재미있게 하기는 어려운데, 나는 솔직히 그 분야에서는 소질이 있었다.
#4
2007년부터는 사법연수원에서도 강의요청이 들어왔다. 일반 기업체와는 달리 후배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라 뜻 깊었다. 계약실무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의를 했었다.
그 이후에는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도 강의요청이 왔고, 나는 선후배 변호사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계약법 관련 지식과 경험들을 열심히 강의로 풀어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강의를 계기로 ‘변호사 가르치는 변호사’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내 강의를 들은 변호사가, 자기 의뢰인에게 나를 소개해서 계약 관련 사건들을 맡기도 했다. 변호사가 변호사를 소개한 셈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강의를 통해 계속 의뢰인들을 발굴했고, 나랑 인연을 맺은 의뢰인들이 다른 의뢰인들을 소개했기 때문에 동기들에 비해 수임실적은 항상 좋은 편이었다.
#5
법률강의만 계속 하다보니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강의를 하는 것은 나의 중요한 능력인데, 강의의 폭을 좀 넓혀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주제가 ‘협상’이었다. 내 책꽂이를 보니 협상/설득 관련 책들이 꽤 많았다. 언제부턴가 협상 쪽 공부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참에 협상공부를 제대로 한 다음 협상 강의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08년경 당시 협상교육으로 가장 유명한 IGM에 협상교육 수강신청을 했다. 과연 협상전문기관에서는 어떻게 협상을 가르치나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