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과 흐르기 시작한 마음에 대하여
#서평단 #도서일기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지만 감상은 철저히, 정말로, 주관적입니다.
누군가 내게 "시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제 나는 이 책을 펼쳐 보일 것 같다. <돌아온 아이들>은 단순한 성장 소설이 아니다. 김혜정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장 조용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풀어낸 결정체에 가깝다.
이야기에는 세 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자라지 못한 민진, 말을 닫아버린 담희, 기억을 잃은 보경.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에서 이탈한 이 아이들은 어느 날 서로의 곁에 도착한다. 처음부터 친밀하지 않다. 말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침묵은 고요하거나 차가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시간을 억지로 흔들지 않고, 머물러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 이 책은 그 시간을 함께 건넌다.
<돌아온 아이들>이 특별한 건, 변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존재 자체로 옆에 머무는 일이 얼마나 크고 조용한 힘을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회복은 말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온다. 누군가의 시간을 다그치지 않고, 그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
민진의 대사, "아뇨. 나는 이제 자라고 싶어요. 나의 시간은 흐를 거예요."는 단순한 성장의 의지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멈춰 있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말은 단지 민진의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닿는다. 우리는 누구나 멈춰 있었던 시간의 자락을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것이 누구의 강요도, 설명도 없이 스스로 흘러가기 시작할 때, 진짜 변화는 일어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힘은 관계의 방식에 있다. 이들은 서로를 단순히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로를 '구해낸다'. 다만 그 구원의 방식이 크고 분명한 구조가 아닌, 아주 조용하고 천천한 이해의 형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들은 말을 끌어내지 않지만 결국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대신 들여다보며, 각자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든다. 설명 없이 머무는 관계,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감각. <돌아온 아이들>은 그 감각을 믿고, 끝까지 지켜낸다.
작가가 다룬 '시간'은 단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감정의 시간, 관계의 시간, 상처가 굳어가는 시간, 그리고 그것이 천천히 풀어지는 시간. 이 책은 시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존재 그 자체를 둘러싼 물결'처럼 다룬다.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그 물결 안에 발끝을 담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였다. "괜찮아. 이제는 흘러도 돼." 그 말은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 닿고, 결국 나 자신에게도 닿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안의 '멈춤'을 떠올리게 하고, 그 시간 또한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조금 덜 외로웠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돌아온 아이들>은 성장 소설이면서, 동시에 감정과 기억,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담긴 이야기다. 누구나의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소설이다.
이 책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감각, 다그치지 않고 곁에 머무는 힘, 그리고 아주 오래 멈춰 있던 내면이 스스로 흘러가기 시작하는 순간들. 그런 것들이 담긴, 아름답고 조용한 이야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