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아이 - 이희주

최애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by 영영

책을 덮고 나서야 문득 생각했다.

이희주 작가님은 대체 어떤 시선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 불편함을 들여다봤던 걸까.

『최애의 아이』는 수많은 모순을 밀어 넣고도, 오히려 숨 막히도록 뚜렷한 방향으로 우리를 밀어붙인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너무도 익숙한 ‘진실’에 대하여.


이야기의 시작은 묘하게 낯설다.

아이돌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할 수 있는 사회.

그 설정만으로도 이미 어떤 비극은 예고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소유’의 욕망으로 얼마나 쉽게 옮겨 붙는지를,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명을 굿즈처럼 다룰 수 있는지를.


이 단편 속 ‘아이’, 이새는 철저히 소유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는 어머니에게 ‘사랑’ 받는 존재가 아니라, ‘갖고 싶은 것’, ‘나만의 것’으로 전락한다.

어머니는 그를 응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를 통해 자신의 ‘최애’를 바라본다.

이새는 그렇게 살아 있는 굿즈가 된다.

존재로서의 아이가 아니라, 내가 사랑한 아이돌의 유전자를 담은 기념품.

‘나만의 2세’를 갖고 싶다는 욕망은, 한 생명의 본질을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린다.


사인회에서 “우리 아이 이름은 2세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섬뜩하리만치 무던하다.

그 말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받아들여질 때, 작품은 조용히 경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은 그 사람을 소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그 정자는 아이돌 것이 아니었다.

거짓된 정자 기증, 상품처럼 거래된 생명, 그 안에 들어 있는 국회의원의 이름.

주인공은 배신당한 팬이 아니라, 속아버린 소비자이자, 이용된 대상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작품은 그 장면을 통해 가장 거대한 질문을 남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아무 말도 닿지 않는 감정.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독자가 그 앞에 서게 만든다.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된 세계가, 생명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정면으로.


작품은 묻는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사람을 소비했던 걸까?


사랑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예쁘게 포장된다.

하지만 이 단편은 그 ‘사랑’이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진열대에 올려놓고 감상하다가, 기대에 어긋나면 아무렇지 않게 폐기해 버리는 것.

그건 사랑이 아니라 소유다.


이새의 어머니는 자신의 사랑이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사랑이 어긋나는 순간,

그녀는 이새라는 존재를 잔인하게 지워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무서운 건, 이 구조가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정보를 캐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명분으로 사생활을 파고들고,

그 감정이 쉽게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비틀어진다.


누구도 칼을 들지 않았지만,

누구도 피를 묻히지 않았지만,

그 사랑은 결국 생명을 해쳤다.


작품은 직설을 삼간다.

하지만 읽는 내내 피가 천천히 식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사랑’이란 단어조차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 말 안에 감춰진 욕망과 자기 연민, 위선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어떤 존재는,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상징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을 기념품으로 삼는다면—

그게 진짜 사랑일 수 있을까?

그 사람의 고통과 생명을 외면한 채 떠올리는 기억은,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단편은 불쾌했고, 그래서 선명했다.

잔인했고, 정직했다.

나는 그 불편한 정직함 앞에서,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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