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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Mar 13. 2021

두 아이의 목욕시간은 전쟁의 서막

두 아이가 함께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돌이 지나니 이제 같이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커버렸다.

아기 때의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난 지금 시절의 이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

첫째 아이는 첫째 아이대로 귀엽고 둘째 아이는 둘째 아이대로 귀엽다.

둘째 아이를 위해 첫째 아이는 목욕할 때 옆으로 자리도 비켜주고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단다.


그러면서 둘째 아이가 아직은 그래도 어리기에 손바닥으로 물을 탕탕 친다.

물을 탕 탕치면 그 물이 튀겨서 첫째 아이 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럼 첫째 아이가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 마 하지 마" 그래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 둘째는 계속된다. 탕탕탕 이제 둘째 아이는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고는

"안 되겠다. 물총 어딨어 물총으로 너를 쏘아 버리겠어"라고 말했다. 정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즐거움으로 시작된 목욕이 전쟁의 서막으로 가려고 할 때 내가 중재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아직 어려서 그래! 동생을 물총으로 쏘려는 거 아니지?" 딱 걸린듯한 표정으로 첫째 아이는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에게 물총을 쏘았다.


나는 흠뻑 옷이 다 젖고 말았다. 하지만 나의 옷이 젖음으로써 이 아이 둘의 평화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우리는 물총놀이가 시작되었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견디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항상.

왜냐면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몰랐던 또 다른 감정을 느끼며 즐거움이 두배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아이가 둘 다 컸을 때 둘이 서로를 의지하며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점점 현대사회는 이웃 정을 느낄 수 없는 삭막함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지는데 나는 우리 아이 둘이 그러지 않기를 원한다.

그리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일주일 전쯤이었을까 삭만 한 사회에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생겨났다.

아파트에서 옆집이라 하면 그냥 남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맞벌이를 하기에 옆집도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 아빠이시지만 자세히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 앞에 택배 박스가 하나 놓여있었고, 그 택배 박스에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문구는 이러하였다.


 "안녕하세요 402호예요. 저희가 중형 기저귀를 받았는데 저희 아이한테는 작아서 필요하시면 그냥 드리려고 한다고 한다. 사이즈가 맞으시면 쓰시고 필요 없으시면 문 앞에 두시면 다시 가져가겠다고. "


나는 이 기저귀 택배박스에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을 보고는 너무너무 감동받았다.

기저귀가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이웃의 정을 느껴서였다. 그러면서

내가 지나온 날을 회생해보면서 이런 이웃이 바로 옆집이라는 점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빵집에 들러 케이크를 사서 옆집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옆집입니다. 기저귀 너무 감사합니다...."로 말을 트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경험을 내가 해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쁜 일이었다.


그날은 너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다짐했다.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이러한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하루도 육아를 불태운다.


아자아자!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 우리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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