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동물 1
어릴 적 우리 집은 어린이대공원이라고 불렸다.
우리 남매는 방을 새들에게 빼앗겨 같이 방을 썼다.
돌 무렵 사진을 보면 내 유모차에는 큰 강아지가 타고 있고
우리 집 어항에는 아마존이거나 푸른 바다의 크고 낯선 물고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틈마다 꽃나무 화분 꽃나무 화분이었다.
동물학자가 되지 못해 아쉬운 아버지는 그중에서도 새를 좋아하셨는데
집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새가 있었고 내가 호주에 동생이 군대에 간 그 쓸쓸한 계절에도
앵무새는 집안을 걸어 다니며 우리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들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와 함께 흰자를 많이 먹고 자랐다 (귀한 새들은 자고로 노른자만을 먹는 바람에)
호주엔 캥거루 코알라 당근 있지만, 그 넘들 '새'들이 참 많다.
까마귀 맞다. 동네 곳곳을 비행 아니 걸어 다닌다.
공원을 혼자 걷고 있자니 부스럭거리고 같이 걷는 그것은 까마귀였다.
검은 저 새만 보아도 무언가 불길해지는 우리인데 늘진한 걸음으로 곳곳을 여유롭게 다닌다.
단, 다른 새들이 한 나무에 앉으면 저리 가라고 난리, 그래 센 놈이었다.
원래 노래는 뜸부기랑 뻐꾸기인데 따오기 하면 왠지 순둥이 친숙한 따오기가 저렇게 못 생겼다니! 동네에서도 숲에서도 호수는 물론 쇼핑몰에서도 앗 퀸스트리트 거리에서도? 곳곳에서 새가 나왔다-하면 저 부리 길쭉한 따오기다.
그들을 보고 싶다면 도심 한복판 맥*날드나 버거*앞 벤치에 앉아볼 것. 감자든 버거든 조각 좀 내놓으라고 마구 달려든다. 먹다가 이동하는 건 왜 사람인가.
동네 새들 이야기에 둘기가 빠질 수 없지. 우리 집 아해들이 어느 날
한국 비둘기는 참 불쌍해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비스무리하게 생겼는데 다리도 멀쩡 윤기도 흐르고
씻은 듯 마알간 얼굴의 그들. 도시에서 닳고 닳은 비둘기는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처럼 쨍쨍 날아갈 밖에
우리나라랑 동일 종으로 보이는 얼굴도 있고, 머리에 살짝 무스를 바른 듯 멋진 헤어의 종도 있다.
20년 전 가장 놀랐던 것은 동네 집들 사이사이 아부지가 그리도 아끼시던(값비싼) 앵무새들이 있었다는
새들의 천국이에요 아버지! 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나무에 조용히 있어도 검거나 나무색으로 눈에 띄지 않으며 짹 조롱 꾀꼴(말고 저 새들의 소리를 어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보통의 새들이다. 간혹 이마나 꼬리가 붉어도 큰 멋을 부리지 못하는 새들이 대부분일 때, 회색에 붉는 머리, 희고도 노란 깃털, 총천연색의 몸빛과 남다른 소리와 총기로 말소리까지 따라 하는 그것들은 그야말로 사랑을 독차지하는 앵무새들. 희고도 노랗고 푸르고 붉은 그들은 다양한 종류로 곳곳을 난다.
이 4가지는 오늘 오전 1시간 여의 산책 중에 내가 마을과-도로와-빈터와-숲과-수영장 근처에서 본 새들이다.
오늘도 큰 보폭으로 천천히 사람이 피해 가야 할 듯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새들을 보며
다음 생에 새라면 호주로-라는 말을 더듬어본다.
얼마 전 호주에 오신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 창문 앞에 와서 울기 시작하는 새의 소리에 반하여 가셨다.
아버지 그 새를 더 이상 잡지 마시어요- 저 큰 새장 호주 땅 훨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