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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Dec 22. 2023

사랑은 유머가 아니야 中

ENFP의 괴로움 3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거야.


파트너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사랑 아니고 영어 이야기이다. 되든 안 되든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 영어를 써먹을 상황을 만들려는 나와 달리, 그는 조용히 매일 혼자 영어 공부를 한다. 이어폰 꼽고 영화 속 구문을 따라 하면서 읊조리길래 내가 물었다.


"아니 영어 쓰는 사람을 만나지도 않으면서 그건 도대체 언제 써먹는 거야?"

"그래도 좀 들리는 것 같아. 말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딱 터질 거라고."

"아니 써먹어야 터지든 연습이 되든 하지. 만날 기회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뭐래."


그러니까 나는 만사 나가자 부딪치자 이것이 길이야 주의자다. 영어도 운전도 사랑도 내가 맞다이니 핀잔도 습관일 수밖에. 그걸 또 그러려니의 표정으로 그냥 듣고 넘긴다. 어쩜 저렇게 무심하지. 그러니 이래라저래라 표현을 잘 안 하지. 그냥 그렇게 크지도 높지도 않지만 늘 같은 것, 영어 아니고 사랑이야기이다.


신은 참 공정하셔서 우리에게 비슷한 인간을 하나씩 주셨다.


큰 아이는 딱 나다. 어떻게 종아리 모양까지 같을 수가 있는지.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 종아리 어디서 많이 본 건데 했다. 유전자의 힘이란. 그 아이는 무조건 자기가 맞다이며 아니라면 자기 생각이 관철될 때까지 파고든다. 아이구 어디서 저런 녀석이... 하다가도 나는 내가 생각나서 입을 다문다.


작은 아이는 딱 그 사람이다. 이랬다 저랬다 변죽을 울리지 않는다. 공개수업에 가서 다들 손 드는데 너는 왜 안 들어?하고 물으니 답이 확실해야 들지-란다. 아이는 첫 말하기도 기저귀 떼기도 한 번에 끝냈다. 문제는 또래에 비해 시간이 걸렸다는 거. 창피당하느니 완전할 때까지 보여주지 않겠다 역시, 유전자는 위대하다.


이 네 명 중에서 서로 죽이 잘 맞는 것은 놀랍게도 반대끼리다. 파트너는 큰 아이와, 나는 작은 아이와 죽이 맞는다. 비슷한 성향끼리는 무지하게 싸우는 거다. 나의 가장 못난 나의 모습을 큰 아이가 보일 때 나의 잔소리는 높아진다. 그도 큰 소리가 날 때는 자신과 가장 비슷한 작은 아이이다. 여기서도 다른 성향은 끌어당기듯 서로를 유인하지만, 나와 같은 것은 심적 불편함을 드러내고야 만다. 결국 자석의 N과 S처럼 다름은 끌리고 유사함은 밀어내나 보다. 그것이 이치인가.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만났던 것인가.


삶이 발랄하기를 원해.


이것이 아마 나의 지향점이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기보다는 재미있어야 하기에 나는 종종 선을 넘는다. 사진을 찍읍시다, 모여 봅시다, 재미있읍시다 하하하. 오늘 요가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는데 까불까불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건 왜 나인가. 집에 오면서  도대체 식지 않는 나의 룰루랄라는 여기서도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가 내가 거기에서 제일 어리니까 하면서 스스로 안위했다. 혼자 '머쓱함'도 생각하게 된 걸 보면 조금은 성장했는가. 누군가는 사진 찍는 걸 부담스러워하거나 안 좋아하거나 나서서 하하 호호 즐겁기보다는 조용히 오늘을 두런두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나도 이제 헤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신과 나는, 마지막 下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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