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와들리 Wadley
Sep 18. 2024
담임 2주 만에 화난 아버님
학교가 달라진 줄 알았다
2주가 채 못 되었다.
이전 담임선생님이 왜 7월 말에 사표를 냈는지 알 것 같다. 초임이던 그 선생님은 혼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번호라도 있으면 고생하셨다고, 모두 잊고 건강히 잘 지내시라, 추석 잘 보내세요-하고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찾으면 찾을 수 있지만 그 또한 그 선생님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 참았다.
그러니까, 복직을 하면서 새로운 담임이 된 나는 2주가 채 되기도 전에 말문이 막히는 학교의 상황을 만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화난 아이, 사고 치는 아이, 싸운 아이들. 이런 것은 15년 경력을 넘긴 내게는 익숙하고도 그네들의 눈높이로 내가 끌어줄 수 있는 것이라 믿었는데 다짜고짜 화난 아버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싸운 애들 왜 둘을 부르냐고요. 부르지 말라고요. 그냥 두시라고요.
이것이 핵심이다. 물론 다른 말들도 여럿 있었다. 초등학교부터의 묵은 갈등과 부모들의 노력 무엇보다 학교 가기 싫어하고 상처받고 있는 아이들, 그게 제일 문제였다. 며칠 안 된 내가 보기에도 아이들 사이에 안타깝게도 오해가 매일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또래를 많이 만난 나도 그들을 존중하기에 악수하고 화해해, 따위의 쉬운 접근은 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더 이상 오해하거나 미워하거나 주변 친구들 또한 고민하지 않게 서로를 존중하도록 조언해 주고 천천히 매듭을 풀어갈 작정이었다. 1주일 동안 개별 상담을 모두 마친 다음 두 아이에게 각각 시간을 구한 뒤 방과 후에 셋이 보았다.
아이들은 매우 다르지만 비슷한 아이들이었다. 나도 중딩이면 돗자리 깔고 어느 정도 보일 정도인지라 다 보였지만 십 대의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섬세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두 아이의 화와 상처를 먼저 보듬어주고 싶었다. 두 아이에게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본 1주일 동안에도 둘 사이에 필요 없는 오해와 미움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별 거 아니네 그냥 화해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둘의 마음을 나부터도 존중하고 어려운 관계를 또한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이야기하게 하고 싶었다.
쉽진 않았다. 가끔 우리 집 아이들도 마음이 안 통해 답답한데 그네들이야 오죽할까. 알겠다 하고 보냈지만 영 석연치 않은 태도와 표정에 집에 오는 길에도 두 아이 생각을 했다. 두 아이를 떠올리며 최선을 떠올리고 다시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담임 2주 차인데 아이들 얼굴이 나의 빈 머릿속을 오래도록 채웠다.
다음날 한 아이의 얼굴과 태도가 너무 좋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오랜만의 담임을 해보니 애들이 참 선생님에게도 짜증스럽고 화를 내는구나 놀라면서, 그러나 애들이니 또 사랑으로 품어주자 하면서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사춘기 감정 업다운에 어머님도 힘드시죠? 하면서 집에서는 어떤지 여쭈어보려고. 사실은 어머님 아이가 담임선생님에게 어떻게 이렇게 버릇이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 사랑으로-라고 다시금 마음을 먹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버님이 전화를 받으시더니 화를 내기 시작하신 거다.
안타깝지만 아버님이 하신 말씀들은 아이가 내게 한 말들과 같았다. 아이가 어찌 이렇게 나에게 강력하게 말하고 항의하고 요구할까 싶었는데 그 말이 그대로 아버지의 목소리로 재생되었다. 시작에서 아버님이 불같이 화를 내셨는데 어린아이가 나에게 버럭 화를 내던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이 전화는 어찌 저찌 옆에 계신 어머님을 다시 바꾸어 인사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이 났고 나는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학교 문을 나서야 했다. 이 전화의 결론은 오롯이 우리 집 아이들이 당해내고 있다. 너 그렇게 버릇없이 굴래? 어디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이러면서 내내 열받은 엄마에게 볶이고 있달까.
사실 마음으로 아버님이 이해가 간다.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했을까. 옆에 계셨으면 응원과 위로를 해드리고 싶을 만큼 자식 걱정에 지친 아버님 이해한다. 그런데 지난 며칠 곱씹어 보면서 아무리 그래도 아버님 그 방법 그런 말투 그런 화난 말들로 제게 퍼부으셨어야 할까요, 싶다. 너무 화가 나셔서 제가 왜 전화했냐면요-라고 하시는데 아버님- 제가 걸었습니다- 했다. 네네 제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아이교육을 함께 해보자고 전화드린 거였는데 말입니다 아버님.
그럼 나는 이 글을 왜 쓸까. 귀국 후의 한국은 곳곳에서 삭막해도 학교의 아이들은 여전히 예쁘고 밝고 정다웠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아이들도 어느새 또 내 새끼들이 되어 미우나 고우나 지켜주고 잘 키워야지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출근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곤 했다. 선생님들은 참 이상해, 언제 봤다고?라고 한다면 그게 또 우리나라 선생님들의 사랑이며 봉사정신이며 교직에 대한 열정이라고 다시금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해외에서 본 작년 여름 선생님들의 연이은 죽음과 애도에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 귀하게 아이들 하나하나의 고민과 꿈을 생각하며 매일 상담하고 매일 기도해 주던 2주였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복직한 내게 선배가 해준 말이다. 그 말이 다시금 생각이 난다. 입술이 자꾸만 씁쓸해지지만 나는 더 큰 마음을 먹고 출근할 것이다. 사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아버님 말고도 세 분의 어머님과 통화를 하고 한 분의 어머님을 만났는데 모두 다른 사유들이었다. 이래서 선생님들이 가끔 쉬러 수업 간다-라고 말한다. 수업 가서 애들 보면 일단 금방 일은 잊고 웃기도 하니까. 이 날 하루를 보내고 온 나는 새벽까지 자지 못했다. 정신이 너무 너덜너덜하면 눈은 동그래지고 말도 잘 안 나온다. 그러나,
나에게는 집에도 학교에도 내 아이들이 있다. 잘 지켜주고 키워줄 것이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