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중학교 국어교사로 17년, 강사까지 20년 근무했다. 대학 서류 2개를 들고 꿈꾸던 A대학을 포기하고 B대학에 넣은 것도 B가 사범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교사가 꿈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교사가 나에게 맞는 걸까
이 고민을 40대 중반에 하게 될 줄이야. 배부른 고민이겠지만 사실이다. 그런 내게도 수 백의 서류를 내던 계절이 있었다.
찬바람이 불고 임용고시 안내가 뜨던 이 즈음, 각 학교들 모집 공고가 나면 서울 대전 제주 더 건너 중국까지 서류를 보내고 부치고 했다. 이런 서류 더미들을 나도 학교에 들어와서 보았다. 강사는 물론 기간제 접수 서류가 행정실에 쌓이고 쌓이는 것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백 명 중 몇 명에 들려고 애를 쓰고, 그 몇 명으로 불려 가 면접을 보며 마지막 한 명이 되려고 애쓰는 그 숨막힘. 그렇게 강사가 되고 그렇게 기간제 교사가 되어 얼마나 좋았던가. 그리고 시험과 면접을 거쳐 정교사가 합격 통지를 받을 때.
터널이었다. 합격 전화에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너무 좋았으니까.
그날 터널 밖은 환했는데 오늘 나는 자꾸만 터널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17년 동안 칼퇴한 적 거의 없다. 아이도 엄마가 어릴 적 다 맡아 주셨고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학교를 위한 일이라면 나의 밤들을 쏟아부었다. 가정이 우선이라지만 나의 행복은 학교에 있었다. 학교를 통해 학생들을 통해 행복했고 보람이 가득했다. 월급날이 언제인지도 호봉이며 수당도 뭔지 몰랐다. 그냥 교사라 좋았다.
교직 17년 만에 올해 매달 월급명세서를 출력해 본다. 나의 호봉이, 나의 수당이, 1년에 한두 번 뭔가 월급이 많은 달이 있었구나. 이제야 깨닫고 있다. GPT가 알려준 나의 사주를 보면 큰 재물 없고 글 쓰고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살게 될 거라더니 정말 주식도 모르고 금융도 모르고 돈을 모르고 열심히 살았다.
꿈을 이루어서 행복했다. 그게 다였다.
아, 그러면 17년 만에 교직의 박봉을 깨달아서? 월급 앞자리가 겨우겨우 변해가는 자신이 답답해서? 아니다.
월급 명세서를 뽑아보게 될 만큼 나의 재정과 나의 미래와 나의 휴직과 나의 사직을 고려 중이다.
지난 17년 나를 끊임없이 밀어가게 한 힘은 무엇일까?
누군가 내게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바로 소명의식이었다. 내가 교사라는, 내가 학생들의 선생님이라는 소명의식. 누가 보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고, 헌신하며, 보이지 않는 곳을 치우고 학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의 올곧은 마음. 봉사하고 희생하며 궂은일을 내가 하고, 불편한 데에 내가 앉고, 남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
그런 내가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그만두기 전에 휴직을 해야 할까 고민도 한다. 이 생각의 끝에는 여전히 귀엽고 밝은 학생들이 있어 미안하지만, 무엇을 할까 생각하니 여전히 청소년을 위한 문화쉼터나 강연 같은 일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나의 학교가 싫어졌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며 사랑하고 내 온몸과 마음을 다하고 싶었던 학교는, 이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