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여겼으나 사랑은 될 수 없었던 인연들.
연인이 되기 전 둘 사이의 관계의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 호감을 갖고 알아가는 사이라고 둘러댄다. 좋게 여기는 마음은 있으나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조금 이른 미묘한 관계에서 보통 그렇게들 말한다. 호감을 가지고 만난 두 사람은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방을 관찰하고 지켜보며 나와 맞는 부분을 찾으려 애쓴다. 취미, 이상형, 가치관, 유머 코드, 정치관, 세계관, 성취향까지 다방면으로 대화를 하며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를 생각한다. 마음속 모양자를 꺼내 동그라미, 세모, 네모, 사다리꼴 형태에 맞춰 상대방에게 대어보며 견적을 맞춰본다. 특별히 모난 곳도 없고 잘 들어맞는다고 판단이 되면 모양자를 던지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선다. 호감이 사랑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순간이다.
길을 걷다가 호감형의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보거나, 동호회에 나가서 괜찮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교회에서 다정한 사람을 만나 연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연인이 된 경우고,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운이 없다면 내 사람을 찾아 발 벗고 나서야 하는데, 이러한 경우 장거리 연애가 되어 돈과 시간이 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들어가거나 마음에 쏙 드는 운명적 사랑은 포기할 각오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내 활동 범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검증받은 인성은 물론이고 주변 평판도 알지 못한 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조금은 불안한 연애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불안함을 감안하고서라도 연애를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해 소개팅 앱이 등장했다. 직업과 학력이 검증된 남녀들을 가입시켜 회원으로 만들고, 사진을 등록하게 한다. 사랑에 대한 적당한 진정성을 갖춘 자기소개서를 적게 한 후 서로를 매칭 시켜 준다. 그 후에 당사자끼리 약속을 잡고 만나 시간을 보낸 후 연인이 되거나 다시 남남이 되는 순서로 진행된다.
소개팅 앱을 열면 첫 화면에 바로 이상형을 만나 결혼에 성공한 커플들이 먼저 뜬다. 그들은 행복한 얼굴로 함께 찍은 사진과 글을 올려 나도 그들처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용솟음치게끔 만든다. 이용후기를 정독한 후 가입을 안 할 수 없게끔 유료 서비스를 며칠 동안 무료로 이용하게 해 주겠다는 솔깃할 만한 이야기도 해준다.
설렘을 안고 가입한 몇 가지 소개팅 앱의 특징을 정리해보자면, '너랑 나랑'은 매일 16명의 사람들을 소개해주었고, 토너먼트로 이상형과 연결시켜주는 방법이었고, '정오의 데이트'는 매일 정오에 2명의 사람을 연결해준다.
'너랑 나랑'은 또래와 잦고 지속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정오의 데이트는 이용 초반에 미남과 매칭이 잘되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두 앱 모두 몇 달간 이용하다가 탈퇴의 수순을 밟았는데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외모에 이끌려 대화를 이어가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는 식이었다. 앱을 삭제하려는데 아쉬운 인연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사이버 연애라도 한 것 마냥 속앓이를 하고, 그리워도 했다.
한동안 연애할 마음이 들지 않아 직장생활만 하다가 문득 이대로 청춘이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글램'이라는 앱에 가입하고 수많은 얼굴들을 보며 내 인연을 찾아 클릭하고 뒤로 가기하며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그 당시 어린 나이와 여성이라는 특징이 '다이아몬드'라는 등급을 부여해주었고, 나는 그 안에서 조금 유리한 조건으로 한 남자와 만나게 됐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나보다 한 두 살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청계천을 걸으며 서로의 연애 스타일을 물었다. 그는 대화가 끊길세라 연달아 질문을 했고, 나는 그의 속도에 맞춰 조금 버겁게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궁금증이 내게 힘겨웠던 이유는 있지도 않은 연애담을 늘어놓아야 했고, 들킬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날씨까지 한몫해서 추웠으며, 짧은 치마와 높은 구두, 얇은 겉옷은 빠른 귀가를 부추겼다.
왕십리에서 만난 두 번째 남자는 흰색 니트를 입고 있었고, 예쁘장한 생김새의 남자였다. 그는 능글맞게 내 옆에 붙어 말을 붙였다. 처음 만났지만 사람 자체에서 다정함이 풍겨왔다. 그는 내 말에 온전히 집중해주고, 정성껏 대답했다. 눈빛도 선량해서 꼭 강아지 같았다. 그러나 내 안에 의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앱을 통해 만난 사람은 언제든 나 말고 다른 사람과 다른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믿음이 없는 관계는 오래가질 못했고, 그와의 인연도 거기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