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어때, 내가 좋으면 그만.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사랑 이야기를 한다. 지나간 연애사 혹은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을 말하며 친밀감을 쌓길 좋아한다. 그 사람의 연애를 보고 대인관계가 서툰 사람인지, 능숙한 사람인지를 판가름하기도 한다.
그의 연애 스타일이 매력적일수록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데 애인에게 잘하는 사람이라면 주변 속에서도 적당히 어울릴 수 있고, 눈치도 있고, 센스도 갖춘 인간의 기본 소양을 갖추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모임에서 내가 솔로임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면, 쿨하게 넘기려 했으나 놀리려는 무리 속에 갇혀버렸다면, 정색하며 화를 내기도 불쌍한 척 소개 좀 시켜달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면.
진퇴양난 속에서 친구들은 내가 솔로인 이유를 재미 삼아 토론하고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지고 싫어진다. 여기에 상황을 더 추가해서 내가 원래 솔로였음이 발각된다면, 문제는 더 심화된다.
애인을 사귀었다가 헤어진 솔로는 놀림감이 되지만 모태솔로는 주변의 사과를 받는다. 더불어 위로도 보태진다. 이야기를 처음 꺼냈던 친구는 대역죄인이 되고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어색해진다.
스무 살에 연애 경험이 없다는 건 귀엽지만 서른 하나에도 사랑을 한 적이 없단 건 나를 아껴주는 이의 걱정을 산다. 걱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이해가 안 된다는 쪽과 이해가 된다는 부류다.
적당히 타협하며 여러 사람과 연애해봐야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사랑할 줄도 안다는 주장과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배우게 된다는 주장의 맞대결이다. 나는 나를 걱정하는 둘을 걱정한다. 내가 이들에게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안겨주었다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이들을 위로하는 나의 방법은 연애를 하고 싶어 안달 난 것은 아니라며 쿨함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도 한 가지 모순된 바람은 있다. 커플링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다.
커플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커플들이 공유하는 안정된 관계에서 비롯되는 편안함을 부러워했던 것인지, 단순히 커플의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것은 깨고 싶은 반항심이었는지, 반지가 갖고 싶은데 예쁘고 깔끔한 디자인이 하필 커플링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커플링을 끼고 싶단 생각은 3년 전부터 했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싱글링을 끼고 다녔다. 싱글링을 하고 다녔을 때 사람들은 내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다니면 난리를 피우며 말렸다. 애인 있는 줄 알고 곁에 있는 사람도 도망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싱글링 조차도 그 자리는 피해서 끼고 다녔다.
고민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은 커플링을 끼자 였다. 주변의 걱정은 걱정이고, 편견은 편견이다. 그것들은 그것대로 살게 두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반지를 사길 망설였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반지는 나에게 잘 어울렸다. 왼손 약지에 끼니 더 빛이 났다. 아무렴, 어때. 내 눈에 예쁘고, 좋은 게 최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