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과 사랑 사이 미묘한 줄타기
연애하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남자 앞에 세워 놓으면 얼음이 되어버렸던 스물여섯의 나는 그 해 가을에 첫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은 친구가 다니는 헬스장의 회원이 주선하여 주선자와 친구를 포함해 8명이 미팅을 하게 되었다.
미팅 장소는 여름인 만큼 빙수가게로 정해졌고, 우리는 테이블을 3개 붙여 합석했다. 어색한 자리인 데다 차가운 빙수까지 먹으니 분위기가 더 얼어붙는 느낌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빙수의 양은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를 않았다. 사람이 여덟 명인데 빙수가 여섯 그릇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주선자는 그런 우리를 이끌고 예약해둔 고깃집으로 갔다. 내 앞에는 곰장어가 구워지고, 다른 불판에서는 삼겹살이 익어갔다. 지글지글 조리되는 소리만 가득하고 우리의 대화는 면발 끊기듯 뚝뚝 끊겼다. 나는 뜻대로 풀리지 않아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려 소주를 들어 잔을 채웠다.
잔이 채워지기도 전에 3개의 손이 내가 든 소주병을 잡아 세웠다. 손등이 다른 손에 감싸져 묘한 느낌이 들자 나는 슬쩍 손을 빼 내 잔을 잡았다.
잔에 술이 차고 나는 술잔을 기울여 목을 축였다. 그제야 앞에 앉은 남자가 선명히 들어왔다. 그는 여기서 멀지 않은 여자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술기운으로 자신감이 올라온 후라 자연스레 눈 맞춤도 하고, 궁금한 것들도 물으며 그와 말을 이어갔다.
여학생만 가득한 학교에 남교사의 인기는 당연히 많을 것 같아서 인기 많죠라며 묻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인했다. 여고지만 모여있는 아이들은 남학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또래의 남자 애들 성격과 비슷하다고 했다. 일하는 장소만 학교일 뿐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직장생활이라 즐거움보단 고단함을 느낄 때가 더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 비어있는 술잔을 채워주니 그가 빙긋 웃었다.
술잔이 채워지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기를 몇 번 반복하고, 대화 주제는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자리가 마무리되려나 싶던 찰나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한눈에 봐도 잘생긴 외모에 눈길이 절로 가서 시선이 한참을 머물렀다. 취해서 시야는 조금씩 흐려지는데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바로 앞에 마주 앉은 그 남자는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마저도 매력 있게 다가왔다.
2차까지 가게 되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늦게 온 대학원생이 자리를 비우고 사라졌다. 먼저 집에 간 것이라 예상하고 조금 서운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밖에 나오자 계단에 앉아 있는 그가 보였다.
나는 그가 먼저 가버릴까 봐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거기서 뭐해요? 안 들어갈 거예요?"
그는 계단에 걸터앉은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다.
"술 좀 깨러 나갈까?"
근처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를 고른 후 다시 돌아가는 길에 서로 번호를 교환했다.
술기운이 올라 기분 좋은 상태로 신호등 앞 신호를 기다렸다.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밤늦은 시간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걸어온 탓인지, 설렌 마음 때문인지 심장이 뛰어서 조금 저린 통증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