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독립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결단하지 못하는 나에게

by Ian

2022년이 된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올해로 서른하나가 되었다. 이 나이가 되면 결혼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미혼이라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결혼은 준비가 되면 하는 것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점점 바뀐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함께 준비해나가는 것이 결혼이라고. 결혼할 완벽한 조건이 만들어질 수는 없겠다고.

이십 대 중반에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아빠를 왜 선택했어? 따지고 보면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집안이 화목했던 것도 아니고, 건강한 것도 아닌데. 엄마는 말했다. "그러니까, 너라도 시집 잘 가. 엄마처럼 고생하지 말고. "

엄마는 빨래를 널며 무심히 말했다. 그 무심한 말투가 가슴에 콕 박혔다. 엄마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계신 걸까? 우리가 태어난 기쁨이 그녀에게 얼마나 오랜 시간 지속되었을까? 아빠와는 정으로 살고 있는 걸까? 결혼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물론 결혼기간 내내 행복할 순 없겠지만, 내가 곁에서 지켜본 엄마의 일생은 참 고됐다. 엄마는 참 힘들게 가정을 지키셨다. 공장 시다 일부터 학교 문방구, 학교 앞 분식집, 가정부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셨다. 그러면서도 내가 중학생 때는 간식까지 잊지 않고 챙겨주셨고, 고등학교 때는 학원이며, 과외며 해달라는 것은 다해주셨다.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다. 용돈 달라면 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아쉬움 없이 자랐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결국은 엄마, 아빠, 개인 생활비용을 아끼고 아껴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가정이 돌아가려면 누군가의 희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시절은 그걸 잘 몰랐다. 엄마는 그 시절의 고생으로 뼈마디, 관절의 고통을 호소하신다. 최근에는 하지정맥류 수술도 받으셨다. 수 십 년의 세월의 고통이 몸에 고스란히 남아 지금의 엄마를 괴롭힌다. 그런데도 결혼 꼭 해야 할까?


아빠 또한 마찬가지다. 택시 운전하시느라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셨다. 언니와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고, 그에 따라 부녀의 관계는 알게 모르게 소원해져만 갔다. 아빠는 모범택시를 하셨다. 내겐 세상에서 제일 운전 잘하는 아빠였다. 신호 잘 지키고, 과속 안 하고, 안전하고, 빠르고, 정확했다. 다른 어떤 택시 운전사보다도 우리 아빠가 최고였다. 그랬던 아빠였는데, 결국 개인택시로 전환하셨다. 경제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모범보다는 싼 개인택시를 더 선호했고, 아빠도 버틸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까만색 택시에서 하얀색 택시로 새 차가 되어 나타난 아빠의 차는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나는 어려서 속도 없이 "와! 아빠 새 차 멋있다! 아빠, 기분 좋지?" 하며 아빠에게 물었었다. 그때 아빠는 조금 힘 없이 "그럼~ 좋지." 라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지금이라면 아빠를 한번 안아드렸을 것 같다. “아빠, 고생 많으셨어요. 서운 하실 텐데, 그래도 걱정 마세요. 아빠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니까요. 아빠가 최고예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때 아빠의 밥에 김치라도 올려드릴걸. 내 밥 먹느라 정신없었던 나에게 꿀밤을 먹여주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러면 안 돼. 철없이 굴면 안 돼." 그날 아빠는 평소보다 더 말이 없으시고 더 지쳐 보였다. 나는 아빠의 컨디션은 안중에도 없고, 간식을 먹고 TV를 보느라 바쁘기만 했다. 사춘기여서 그랬나? 더 바보 같았다. 이런 자식을 낳아서 키우기 위해 결혼을 해야 하나? 그럴 바에는 아기를 안 가지는 게 낳지 않을까?

그러나, 엄마는 결혼을 하라고 하신다. 나중에 외롭다면서. 아기를 안 가져도 좋으니 결혼은 해야 한다고 말이다. 엄마는 언니를 서른셋에 낳았다. 성가 복지병원에서 언니를 출산했을 때 친할머니는 크게 기뻐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언니를 갖기 전 여러 번의 유산을 하셨다. 귀하게 얻은 아이인 만큼 감사헌금도 두둑이 했다고 들었다. 아빠는 일을 나가셔도 꼭 점심은 집에서 드셨다. 언니를 한 번이라도 더 안고 싶어서였다. 뛰어다니다 넘어질까 늘 업고 다녔고, 좋은 것만 먹였고, 비싼 것만 입혔다. 오죽하면 언니가 브랜드 옷 아니면 안 입는 다고 악을 쓰고 고집을 부렸을까. 버릇이 잘못 든 거다. 그래도 부모님은 예쁘다 예쁘다 하며 언니를 키웠다. 그리고 삼 년 뒤 내가 태어났다. 그에 비해 나는 온순하게 자랐다. 먹으라면 먹고, 입으라면 입고, 자라면 자고. 잔병치레도 없이 속 한번 안 썩이고 잘 자랐다. 언니와 내가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언니는 돈은 많이 안 들였지만 속을 많이 썩였다. 골목대장처럼 동네를 들쑤시고 다녀서 친구들과 트러블이 있었고, 엄마는 종종 남의 엄마에게 사과를 하러 다녀야 했다.

나는 아파서 돈이 들어갔다. 척추측만증이라고 해서 척추 휘는 병으로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 아빠와 대학병원도 자주 가고, 엄마와 보조기도 맞추고, 허리에 좋다는 마사지도 많이 받으러 다녔다. 못해도 돈 몇 천은 깨졌을 거다. 게다가 애가 아파서 그런지 기도 못 펴고 우울해하기도 하니 부모 속이 문드러지셨을 거다. 보조기를 차면 숨쉬기도 어렵고 걷기도 어렵고 앉기도 불편하다. 게다가 딱딱해서 날개뼈나 골반뼈는 물집이 잡힐 정도로 많이 아팠다. 울고 불고 보조기 안 하겠다고 엄마 앞에서 보조기를 집어던진 날 엄마도 같이 우셨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성장기 동안만 참으면 이깟 보조기 불태워버리자고.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보조기를 차고 엉성하게 걸으며 학교에 가는 꿈을 꾸면 나는 대인기피증을 겪었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체육시간에 보건실에서 보조기를 풀고, 다시 체육을 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던 그 번거로움이 생각나 울먹인다. 보조기를 누가 볼까 봐 숨겨놓으려 아등바등하면서, 소문이 나면 아무도 나랑 어울리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년이 끝나고 반 아이들끼리 롤링페이퍼를 돌리면 늘 나를 향한 메시지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있었다. 현서야, 아픈 곳 얼른 나아. 아픈데도 늘 밝아 보여서 보기 좋아. 나는 손가락으로 그런 글들을 가리고 안 보려 애썼다. 지우고 싶은데 코팅되어 있어서 지울 수도 없었다. 아픈 아이. 나는 그렇게 기억되기 싫었다.

부모는 한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모님은 두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낳아서 기르고 결혼하고, 그 아이의 자식까지 돌봐주게 된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엄마와 아빠만큼 할 자신이 없다. 엄마는 아빠가 노래 부르는 모습에 반해 결혼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젊은 날의 낭만. 그것뿐이다. 엄마와 아빠는 사랑을 했고, 그 결실로 언니와 나를 낳았다. 그런데, 정말 힘들게 기르셨다. 지금 내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겠다. 우리 엄마 아빠 정말 고생스럽게 우릴 키우셨구나. 눈물이 아른거린다. 나는 이렇게 살 자신이 없다. 우리 엄마는 지금까지도 언니와 나를 케어하느라 고생하신다. 아직 독립하지 못한 두 자식들의 밥을 짓고, 그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뒤치다꺼리를 다하신다. 이제 엄마의 나이 곧 일흔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쯤 독립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것은 실상 독립의 의미를 갖는다.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셨듯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식이 독립할 수 있게끔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라고 한다. 인간은 독립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혼자 살 수 있어야 한다. 톡 까놓고 말해 나는 지금 나가 살 돈이 없다. 그리고 살림도 잘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가서 살아야 하나? 정말 월세방이라도 얻어서 혼자 살 연습을 해야 하나? 결혼을 못한다면 그렇게라도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는 게 맞을까? 요즘 드는 고민이다. 언제까지 엄마의 품 안에서 살 수 있을까? 나이는 들어가는데, 아직까지도 독립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나는 꿈을 꾼다. 언젠가 서울 내 집을 마련할 날을. 그래서 좋은 재료로 직접 손질해 요리를 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그린다. 그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끔 초대해 같이 시간을 보낸다. 딱 그 정도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아직 내게 먼 미래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축복이겠지만 그런 날이 올까? 싶기도 하다. 내가 결혼하고 싶어지는 때가 오면 정말 그 사람을 미치도록 사랑해서일 거다. 이런 고생길을 스스로 자처해서 걸어가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결심하는 것은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라는 마음에서 일거다. 엄마와 아빠처럼. 수많은 조건들 속에서도 아빠를 선택했던 엄마처럼. 젊은 날의 엄마는 아빠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돈 많은 집 아들, 선생님, 교수, 등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에게도 고고한 학처럼 도도함을 유지했던 엄마가 아빠를 만나 사르르 녹았던 걸 보면 정말 사람에게는 인연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지금은 아쉬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때 그 남자가 집이 몇 채래. 부동산이 몇 개래. 땅 부자래.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그 남자랑 결혼했으면 우리가 안 나왔잖아라고 내가 말하자 툴툴대는 내 얼굴을 잡고 뽀뽀를 쪽 해주셨던 엄마. 이런 게 가정의 행복이고 사랑이 아닐까 싶다. 순간의 선택이 후회가 아니라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그렇게 믿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안에서 내 인생을 꾸려가는 것. 나는 이렇게 엄마와 아빠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게 자랐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결혼을 결심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한 가정의 엄마가 될 자격이 내게는 없는 것 같다. 내 것을 내 자식에게 쥐어주고, 나는 헌 옷을 입고, 먹고 싶은 것을 양보해야 하는 삶. 갖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고 딸과 아들의 것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 삶. 내 인생은 잠시 뒤로 미뤄둬야 하는 삶. 그런 삶은 내게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런 고통이 행복으로 치환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결혼하고 나니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다.


결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언제까지이고 아이로 남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내 인생 하나만을 책임지고 살 고 싶은 마음. 지금까지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벅찼다.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고, 미끄러지는 데 남을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남들은 주위도 보고 사는 모양이다. 같이 손도 잡고, 같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함께 울고 먼지도 털어주면서 말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을 만한 자신의 짝을 만났을 때 우리는 결혼을 결심하게 될 것이다. 질문을 다시 바꾸고 싶다.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하자. 그럼 결혼해도 괜찮을까?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연애 하나에도 세상이 끝날 듯 울 것만 같은데 결혼해서는 얼마나 더 힘들고 아플까? 게다가 책임 질 가정이 생긴다면...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져야 결혼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만 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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