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된 지 10,819일입니다.

돌싱이 여자 친구가 생기고 결혼을 하기까지 나는 혼자였다.

by Ian

새해다. 떡국을 한 술 뜨려는데 결혼 얘기가 나온다. 다시 수저를 내려놓았다. 남의 집 연애, 혼사 얘기에 무슨 그리 관심이 많은지 엄마가 입을 쉬지 않으신다. 정초부터 쉽지 않다. 눈칫밥 아닌 눈칫밥을 먹고 있는데 눈치 없는 언니가 한 마디 거든다.


“35세 이상 남자의 75%가 미혼이고 여자는 56%래.”


어쩌라고.

가만, 미혼 비율이 많긴 하네. 나도 안심해도 되는 상황인가?


미어캣처럼 주변을 보게 된다. 어디든 쪽수 많은 곳에 가서 나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 진다.

사촌 중 하나가 또 시집을 간다. 엄마는 툭 한 마디를 내뱉는다.


‘아휴, 남의 집 자식들은 때 맞춰 잘들 가는데, 우리 집 딸들은 소식이 없네.’


엄마... 님을 봐야 별을 따죠. 전 연애도 시작 못했는 걸요? 이 말이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명절인데 희망차다기 보단 좀 부담스러워진다. 올해는 길가다가 누구라도 만나야 되겠다는 뭔가, 그런 의무감이 든다.




언니 회사에 돌아온 싱글 과장님께서는 재작년에 이혼을 하셨다. 그리고 작년에 여자 친구를 사귀고 결혼에 골인하셨다. 내 친구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이제 막 100일이 지났다.


“너도 연애 좀 해. 누구라도 만나.”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다. 가진 자들의 저 오만함. 내가 노력을 하고 눈을 낮춰야 한다며 훈수를 둔다. 내가 허락한 적도 없는데 나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잘못된 점을 꼬집는다. 처음엔 웃으며 응수했다. 받아치기도 하고. 그런데 이젠 힘에 부친다. 완전 넉다운이다.


노력을 안 한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지만 거절당했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가가 호감을 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개팅도 많이 해봤지만 인연이 닿질 않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점점 힘이 빠졌다.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을 해야 하나. 얼마나 더 상처를 받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아직 더 내려놓아야 할 것이 남았나? 마음이 또 확 가라앉는다.


떡국을 한 그릇 비웠다. 나이는 한 살 더 먹은 셈이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위는 가득 찼는데 마음은 어째 더 헛헛하다. 정신적 허기로 무언갈 하고 싶지가 않다. 정초라고 뭐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슬픈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아직도 혼자인 내가, 지금의 모습이 모두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다.


어느 마음에 기대어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혼자서 마음을 다독거려 보려 하는데 마음이 자꾸 엄한 데로 튀어 가버려 잡을 수가 없다. 삼 일 전부터 두통을 달고 산다. 편두통 약을 하나 꺼내 물과 함께 삼키면서 한숨을 쉬었다. 몸에서 증상을 보낸다. 힘들다고 아우성이긴 한데 돌봐줄 기운도 없다. 그냥 약을 먹였으니 고통도 스스로 잠들길 바란다.


내게 필요 없는 관계는 모두 끊었다. 그렇게 조촐한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렇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기에. 가족은 늘 가까이 마주 볼 수밖에 없다. 미치도록 사랑하면서도 그만큼 피곤한 사이. 애증이 범벅된 관계. 그중에 좋은 것들만 걸러낼 수도 없는 이 지난하고 복잡한 생의 고리여. 나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가 이젠 듣기가 싫다. 아니, 이건 원래 싫었다. 결국에 엄마의 잔소리는 엄마의 팔자 탓으로 넘어가 서다.


“어휴,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음식을 씹다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 들은 말은 아니지만 그냥 언제 들었는지 모를 그 말이 내내 내 가슴 한 편에 덩어리 진체 웅크리고 있다. 엄마 친구가 소개팅을 해보라고 남자 사진을 보여주셨다. 나는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인신공격을 시전 했다.


너는!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냐? 그냥 공부 삼아 만나봐. 당장 결혼하라는 것도 아니잖아.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나도 첫 연애인데 취향 존중 좀 해줘.
너, 그런 식으로 하면 주변에서 남자 소개도 끊겨. 너 알아서 해.

그리고, 냉전이 이어졌다. 말로는 네가 스트레스를 그리 받으면 소개팅 나가지 않아도 좋다고 했으면서 실제로 진짜 안 한다니 엄마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 나는 엄마의 분노를 피해 언니의 방으로 대피했다. 언니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건넸다.


“엄마가 화가 많이 났네. 그래도 네가 아니면 만나지 마.”

“엄마가 나를 떨이로 팔려고 하나 봐. 마치 팔려가는 기분이야.”


언니가 폭소했다. 언니는 웃었지만 나는 울고 싶었다. 품 안에 자식이라는데 우리 엄마는 왜 저렇게 나를 내보내려고 안달일까? 서럽기도 하고, 막상 이 집이 아니면 살 곳도 없는 내 처지도 불쌍했다. 지금 글 쓰는 데도 좀 가슴이 먹먹하고 슬프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더 슬퍼진다. 엄마 나이 곧 칠순이고, 이제 하루빨리 내가 독립을 해서 자리 잡길 원하시는 거다. 내 곁에 짝이라도 있으면 더 금상첨화다. 손주라도 안겨드리면 더할 나위 없겠지. 요즘 들어 311호 아줌마의 손녀 얘기를 자꾸 꺼내신다. 부러우신 거다. 북적거리는 모습이 좋아 보이시는 거다. 나는 불효녀다. 서른 하나인데 아직도 엄마에게 짐짝처럼 업혀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럽다. 어휴, 또 신세한탄을 하게 된다.


되고 싶은 나와 그냥 지금의 나의 간극이 너무 크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다. 마음의 거리도 몸의 거리도 아득하다. 연애 시장의 파이는 항상 일정한데 나만 한 조각도 들지 못한 채 멍청하게 서 있다. 내게 올 기회만을 기다리면서. 언젠가는 내 차례도 오겠지. 그렇게 망부석이 된 채로 서 있겠지. 한심하게.


또 두통이 찾아온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다. 남들의 경사에 축하는커녕 한숨만 한 사발 들이킨다. 편두통 약을 먹으러 엉덩이를 뗀다. 그래도 약을 먹으면 약효가 10분 내로 돈다. 그럼 좀 생각을 멈출 수 있다.


‘생각을 끝까지 해 버릇해. 그래야 너 자신의 답을 찾을 수 있어.’

친구가 내게 했던 조언. 오늘의 생각이 끝까지 가면 머리가 너무 아플 것 같다.

‘내 소신대로 살겠다. 아 몰라 몰라. 싫은 건 안 해. 좋은 것만 할 거야.

끌려야 간다. 손발이 잘려도 아름답고 빛나는 걸 찾아갈 거야.

사람이든 돈이든 작품이든 내가 사랑하는 걸 찾을 거야. 누가 뭐라든.‘

어쩌겠어. 고집불통 독불장군 같은 나 인걸. 오늘의 결론이다.


내 뜻대로 하고 후회도 그때 가서 하겠다. 아직 벼랑 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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