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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Feb 09. 2022

자기 전 립스틱을 바릅니다.

나이트 루틴으로 본 그녀의 셀프 세러피 방법

요즘 유튜브에는 다양한 ‘나이트 루틴’ 영상들이 인기다. 그만큼 잘 준비에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스킨케어 피부관리에 3-5가지는 바르고, 헤어 에센스와 오일까지 마무리한다. 그리고 차분한 조명으로 잠에 들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같이 포근한 잠에 들자는 분위기를 만든다. 영상이 엔딩을 향해 갈수록 시청자들의 눈은 스르륵 감기고,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잠시 해본다.      


‘방금 그 상품 뭐였지? 나도 써봐야겠다.’     


‘나이트 루틴’은 이너뷰티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저대로 따라 하면 내일 아침 일어나서 왠지 꿀피부와 생기 있는 두 볼을 얻고, 다크서클은 사라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일까? 모닝 브이로그와 식단 루틴, 운동 노하우 등의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박막례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듯, 추억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돈을 들여야 괜찮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유튜브를 보는 것은 무료지만, 노하우를 따라 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영상에서 나온 인센스, 기초 케어 제품, 샤워 가운, 헤어 관련 제품, 화장품, 마사지 기계, 진동 칫솔, 거울, 조명까지 도합 몇 십만 원은 호가할 것이다. 따라서 산다고 영상에 나온 그녀, 혹은 그 처럼 출중한 외모와 보디라인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건강해 보이는 혈색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도 쉽진 않다.  

    

그래서 나는 나이트 루틴도 눈요기 거리, 재미 거리로만 보고, 따라 하지는 않는 편이다. 귀찮기도 하고, 경제력도 좀 달리고, 솔직히 잠들기 직전인데 뭘 그리 신경 써야 하나 싶기도 해서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얼굴에 로션, 바디에 로션, 입술에 립밤 정도만 바르고 잠자러 간다.

          

그러나 혈육인 언니는 나와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샤워를 한다. 그리고 로션을 바른다. 여기까지는 똑같다.  지금부터 달라지는 데 그녀는 자기 전 립스틱을 바른다. 립스틱은 오늘 낮에 발랐던 색은 바르지 않는다. 거울을 보며 지웠다 발랐다 수정하며 공을 들인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한번 싱긋 웃는다. 이것이 언니의 나이트 루틴이다.     


사람들이 나이트 루틴을 보며 잠드는 이유는 아마 본인의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전 내 하루는 왜 이리 부족하게 느껴지는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고, 왜 그렇게 행동했고, 왜 그렇게 일을 처리했는지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 일어나서 뭔가를 하기에 시간은 너무 늦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엔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피곤하다.


밤 1시를 달려가는 시간. 하는 수 없이 유튜브를 보면서 잠에 들기로 한다. 내 하루는 고단했으니 잔잔한 영상 하나 보며 힐링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리 신나지는 않으니 적당히 좋은 기분으로 나를 재워줄 수 있는 영상. 결국 고르고 고른 영상은 배꼽 잡는 개그 영상이 아니라 ‘ASMR’ 혹은 ‘브이로그’ 혹은 ‘나이트 루틴’이 되는 것이다.      

 

아마, 언니에게 자기 전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는 언니만의 셀프 세러피가 아니었을까. 오늘 하루를 언니의 식대로 정리하고, 스스로를 위로해주며 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일종의 셀프 포옹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특이하고 별나 보여도 언니의 그 행위는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 아닌가. 요즘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고 있는 만큼 언니는 트렌디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요새 잠들 때가 되면 두통에 시달린다. 두통약을 달고 살 만큼 힘이 들다. 언니는 내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퉁명스레 걱정 섞인 말을 한다. “잘 때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자. 너는 전자파 때문에 그래.” 언니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잠들기 전 스마트폰이 곁에 없으면 불안할 정도다. 손에 핸드폰이 없으면 심심하고, 외롭고, 심하면 슬프기도 하다. 스마트폰 없으면 우울해지는 게 정신병적 불안과도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래서 오늘은 스마트폰을 좀 멀리 두고 잠에 들어보려고 한다.


나도 고된 하루를 치료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려고 한다.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      


On the ground.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분명 답이 있을 것이다. 나도 나만의 세러피를 찾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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