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삶이 주차와 닮은 이유.
친구네 작업실에서 내 짐을 뺐다. 그중 가장 큰 짐은 바로 ‘책상’이었다. 사실 그냥 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나의 ‘실패’를 방증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팀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어.’
나는 이제껏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정의 내리며 살았다. 그건 내가 마음먹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였고, 마음만 먹으면 나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며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정작 일 년의 시간 동안 글쓰기에 부딪히며 지켜본 나는 고집불통에다가 발전이라고는 없는 꼴통이었다. 제법 많이 울었고, 때로는 상처받았으며 다 포기하고 싶었다. 작업실에 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다.
‘혼나러 가는 길 같아.’
이제야 보이는 것은 그때의 팀은 나와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친구인데, 얘는 나랑 비슷했던 애야. 근데 얘한테 뭘 배울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함께 만드는 작품의 피드백을 나눌수록 내 마음은 꼬여만 갔다.
‘아... 뭐가 이렇게 까다로워. 또 무슨 지적을 하려고. 피곤하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피드백 안에는 미처 자라지 못한 내 어린 부분들이 건드려졌다.
네가 아직 세계를 보는 눈이 작고 편협해.
일단 아는 게 부족하니 쓸 수 있는 게 많지는 않겠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상처가 있네. 일부로 피하려는 거야? 그런 거라면 아예 지우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건 이렇게 해줘야 해. 우린 팀이지, 너의 선생님은 아니야. 너의 역할을 네가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이건 팀이라고 볼 수 없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네가 쓴 글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말해주느라 들어가는 시간이 꽤 많아. 그럼 모두가 발전하는 방향, 모두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낀 팀, 즉 우리가 한 가지 작품을 완성시키는 무리라는 판단이 안 들자 나는 팀에서 나오게 되었다. 요즘 ‘방과 후 설렘’이나 ‘프로듀스 101’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듯 팀에서 방출된 것이다.
그때는 마음의 정리가 참 서툴렀다. 팀에서 방출되었을 때도 속상한 마음에 눈물부터 났고, 아쉬움에 위로만 받고 싶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 너희 같은 애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내 말에 친구들은 웃으며 말했다.
‘야, 너 나 다신 안 볼 거냐? 언제든 좋은 작품으로 다시 같이 할 수 있는 건데.’
‘얘가 이별에 서툴러서 그래. 이런 이별도 앞으로 많이 경험하게 될 거야.’
그리고 완전한 이별이라 예감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작업실에는 내 책상이 생겼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연습생 신분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 때는 직장도 잘리고, 갈 곳도 없어서 친구네 작업실로 매일 출근을 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가끔 영화 이야기나 웹툰,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작품 분석 식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고, 나는 가볍게 공부하듯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운 부분은 어쩔 수 없이 흘려듣고 좋은 부분은 기억해두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그 옥탑방의 계약기간이 다 되어서 우리의 작업실은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상을 들고 나왔을 때 헛헛함에 허전함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계약기간 만료는 내 황금빛 미래에 재를 뿌린 것만 같이 느껴졌다. 끌차를 끌고 책상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고정줄이 풀려 책상이 뒤집어졌다. 나는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다. 정말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구나.
끌차 사용이 익숙지가 않아서 헤매고 있는데 행인 두 세분이 오셔서 나를 도와주셨다.
뭐라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분이 묶어주시는 데로 가만히 앉아 그 모습만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업이 다 끝나고, 도와주신 분께 연거푸 인사만 했다.
‘감사합니다.’
내 처음 시작을 그대로 끌고 집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숨기듯 책상을 내 방으로 들여놨다.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아직은 마주하기가 좀 힘들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책상에 맞는 의자를 샀다. 그리고 노트북을 올려두고, 무언갈 쓰기 시작했다. 처음처럼 좀 어색했다. 작가가 된다며 노트북을 내 돈 주고 샀을 때처럼, 그 설렘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제 내가 놓치면 아무도 날 잡아주지 않겠구나. 그럼 내가 날 잘 관리해야지.’
글쓰기란 원래가 외로운 것인데, 그때는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마음으로 그저 가볍게 생각했다. 과자 들고 음료수 들고 가서 수다 떨 생각이 앞섰다.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때 글쓰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작업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내가 쓴 글을 분석하고, 작품 시장을 분석하는 친구들을 보자 부담감이 느껴졌다. 잘한 것보다 못한 게 더 많아서 카톡으로 수정사항을 핸드폰 액정 크기 한판 가득 채워서 받을 때도 있었다. 지금 그런 피드백을 받게 되면 그때보단 더 진심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고마움의 측면보다는 나를 미워하나?라는 식으로 계속 생각이 치우쳐졌다. 파일을 보내면 직설적인 단어와 용어들이 섞여서 빨간펜으로 수정사항이 돌아오니 더 그랬다. (아기 같은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좀 생각의 크기가 자란 모양인지, 그때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때는 이해가 안 됐지만 그때 내가 배웠어야 하는 것들 말이다.
기대기만 하면 등을 대주는 쪽이 무너질 수도 있다. 내가 스스로 균형을 잘 잡고 서 있어야 어떤 일이 생겨도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다. 그때는 그걸 잘 몰랐다. 친구니까 언제든 있어주겠지,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린 동료로 만난 거라는 걸 자꾸 잊었다.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내 즐거움과 감동에 취해 글을 쓸 때가 있다. 그럴 때 그 부분을 짚어주는 사람은 필요하다. 나는 이제는 강의를 들으며 습작을 만든다. 근데 또 강의를 들으며 느끼는 것은 그 친구만큼 내 식에 맞춰 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나고 난 후에야 밀려드는 씁쓸함이라니. 역시 기회는 왔을 때 잘 잡아야 한다.
내 책상은 언제든 다시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 이제껏 소시민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내게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 책상이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나오고 보니 사실 그리 큰 일은 아니다.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한 이상 이제부터 나는 내 책상을 들고 다니며 빈자리가 나면 얼른 책상을 주차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일정 시간 주차했다가 시간 되면 차를 빼고 다시 책상을 싣고 운전을 하러 나가야 한다.
내 방에 책상이 들여놓아진지 3년째다. 책상 하나 두었을 뿐인데 괜찮은 작업실이 되었다. 아직 완벽하게 독립한 건 아니지만 문 닫고 작업하면 소음은 차단되고 집중할 수 있으니 참 좋다. 이 주차공간은 아직은 무상인데, 더 넓은 공간에 책상을 대고 싶은 욕심이 난다. 그러려면 더 부지런히 책상을 들고 더 넓은 곳을 물색하며 다녀야 할 것이다. 기대 반 설렘 반, 그리고 두려움 반이다. 그렇지만 일단 시동은 걸어보자. 자리가 났을 때 민첩하게 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