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시 43분, 17시 57분, 18시 42분
우울증 약,
우울감과 수면장애를 도와준다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싫어하고 병원을 싫어하는 나에겐
살면서 집어든 것들 중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물질이다.
처방받은 당일 17시 43분 약을 먹고 17시 57분
그간의 이야기를 남겨본다.
우울감과 함께 찾아온 건 이상한 식욕 문제였다.
식욕이 느닷없이 폭발하길 반복했다.
배가 찢어질 듯 먹고 후회한 건 셀 수가 없다.
그리곤 어느 날 또 갑자기 굶는다. 많게는 3킬로 정도가 하루이틀 사이 빠져버리고 기운은 전보다 더 없어지곤 했다. 많이 먹든 안 먹든, 후회는 늘 찾아왔다.
2개월이 넘게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소주 640미리와 맥주 1.5리터를
들이붓고 꽂히는 날엔 소주 640미리가 한 병 더,
그리고 기절하듯 잠이 드는데 일어나는 건 정확히
6시간 안쪽이었다. 음주가 잠이 들게는 해줄 수 있지만
깊은 잠을 자게 해주진 않는다는 걸 일찍이 알았으나
계속 기대를 했다.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조금 안정이 됐던가,
술은 줄이게 됐지만 한 번씩 먹는 날엔 멈출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들이부었다.
술 먹은 걸로는 크게 피곤하다 느끼지 않았고,
의외로 내가 건강한가 착각을 여러 번 했다.
러닝을 한 번 해보겠다며 500미터쯤 슬쩍 달려보고
알았다. 체력은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것을.
우울은 엄살이고, 나약함의 증명이라며 아주 쉽게
무시했던 시간이 길다. 말로는 우울하다 참 자주
말했지만 병원을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평가한 대로라면, 나약한 사람이 된 거다.
지금은, 아픈 사람이 된 것을 인정한다.
삶의 모든 걸 무너트릴 수 있다는 걸
기어코 반쯤 무너진 후에야 알아서 하는 말이다.
우울감은 뭔가를 하기 힘들게 하지만,
사람들은 뭔가를 해보라고 얘기한다. 뭔가를 한다는 거
자체가 어려움이고, 지금 이 몇 글자를 쳐내는데도
40분이 넘게 걸렸다. 생각의 흐름이 부드럽지 않지만
쓰는 거라도 다시 시작하려는 내 노력은 부끄럽지 않다.
18시 42분, 약 먹은 지 1시간쯤 지났지만 특별한
반응은 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