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특권
“오늘도 실습 다녀왔어?”
그레이가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온 지수에게 묻는다. 지방에서 와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니는 친구다. 요즘은 현장 실습을 다닌다고 여념이 없다.
“네… 너무 힘들어요… 밥 먹을 시간을 10분밖에 안 주는 게 말이 돼요?”
“10분? 너무 하긴 하네”
“난 가뜩이나 밥 먹는 것도 느린데…”
“지수는 두타임이지.”
주말 알바인 지수는 평상시 밥 먹는 속도가 느려 직원들이 돌아가며 밥을 먹을 때 혼자 두타임을 먹는다. 주말이라 최대한 빠르게 먹는다고 하는 속도가 그렇다.
매장 바쁘다고 밥마저 빨리 먹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천천히 먹으라고 말은 하지만 직원들도 빨리 먹으려고 신경을 쓸 터다.
“진짜… 너무 뭣도 없이 이거 한다고 했나… 일 하면서 공부 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한건데…”
매장에서 그레이밖에 모르는 지수의 얘기지만 학창시절 너무 뒤늦게 공부에 뜻이 생겨 공부하려 했으나 지수의 부모님은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해 돈을 벌었으면 하셨고 결국 입시공부부터 대학까지 본인이 알아서 할 요량으로 일을 하며 공부를 하려고 독립한 상태다.
그레이는 본인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띠동갑인 어린 친구가 야무져 내심 대견해 한다.
“남들은 공부 하겠다고 하면 늦어도 옳다구나 하고 좋아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어휴 공부를 하겠다고 해도 나몰라라네…”
“지수가 학교 다닐 때 너무… 음 아니다.”
“뭐요! 뭐가요!”
“아니야 일하자 얼른”
내심 고민이 많겠다 하며 농담으로 자리를 뜨는 그레이다.
***
“뭐하냐?”
잠깐 한가해진 사이 지수가 알바*을 보고 있다.
“너무 대놓고 보는 거 아니야? 좀 서운한데?“
“매니저님 우리 풀타임도 사람 뽑아요?”
“파트 말고? 왜?”
“아뇨 그냥… 퇴근 빨리 하는 일 하면 일찍 퇴근해서 공부 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하려고 했던 건데 오히려 이거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드는 거 같아서요. 그냥 빨리 돈 모아서 종합학원 들어가는 게 맞는 건가 싶네요…
“…그렇게 힘들어?”
“뭐… 일이니 힘든 건 당연하다 싶긴 한데… 힘든 게 아니라 여러가지로 잘 안 맞는 거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너무 여유 없이 선택해서 잘 못했나 싶기도 하고…”
항상 그렇다. 여유 없는 현실과 상황은 무엇이든 계획과 결정에 발을 건다.
“음… 일단 일 구하는 건 한번 물어 볼게 사장님한테. 이번에 그만두는 친구 있어. 구할 수도 있고 모르겠네 나도.”
“진짜… 밑 깨진 독에 물 붓는 건가 싶어요…”
“…?”
뜬금없는 말에 그레이는 지수를 바라본다.
“아니… 그냥 그래요. 뭐 해볼라치면 안되고 힘든 이유는 수두룩 하고, 뭐든 안 될거 같다 싶으면 운 좋게 넘어가는 예외 없이 다 안되는 게… 몰카도 아니고”
“…살다 보면 그렇지 뭐.”
“근데 이렇게 누가 짜 맞춰 놓은 듯 이러는 건 좀 심한 거 같아요.”
“…”
“잘 되고 마음을 좀 놓을까 싶을 땐 일부러 숨겨 놓은거처럼 안 좋은 일이 짠 하고 나타나고, 좋은 일은 마음 조리고 바라고 바래야 적선하듯이 오는게 참… 힘드네요. 다들 별 노력 없이도 잘 되는 거 같은데 난 이러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공부고 뭐고 그냥 다 그만둘까”
“…사는게 참 그렇지.”
“후…”
‘이런 때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본인이라도 열 살 이상 어린 동생, 후배에게 오지랖 한번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니 주제에 조언씩이나 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지만 애써 고개 돌리지 않고 지수를 보며 입을 연다.
“양동이에 물 한방울 효과라고 알어?”
“…양동이에 물 뭐요?”
“뭐 그런 게 있어 유튜브에서 봤어. 간단히 말하면 사람은 현실에 압도당해서 내가 하는 일이 별 기여가 없다 생각하면 노력자체를 그만둔데. 물이 가득 찬 양동이에 물 한방울 떨어트리면 티도 안 나는 거처럼. 내가 한 일이 티가 나야 노력도 한다는거지. 왜 전세계 기아 문제에는 무감한데 길 고양이한테는 편의점에서 추르를 그렇게 사다들 먹이잖아?”
“그렇긴한테 그냥 관심 문제 아니에요? 복잡한 얘기 할 거 없이.”:
“그것도 그렇지. 근데 내가 20대때 아쉬웠던 것도 그런 거야. 사는 게 퍽퍽하고 그때 그때 살아내기에 버거울 때 마다 그래. ‘이거 진짜 쓸데 없는 거 같은데 그만 둘까. 이렇게 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거 같은데 그만 둘까.’이렇게”
“아…”
“나도 물론 너와 다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내야 하지만. 적어도 너는 모르지만 12년 더 산 나는 알고 있는 게 한가지 있지.”
“..?”
“지금 니가 떨구고 있는 물 한방울은 물이 아니라 땀이고 땀은 짜. 계속 흘리다 보면 물 양동이 전체가 다 짜질 거야. 현실도 바뀔 거야. 그러니 니가 힘들게 하는 일이 절대 의미 없는 일은 아니야. 근데 짜지기 전에 그만 두면 뭐… 애매하게 싱거워지는거지”
“…매니저님 이런 말도 할 줄 알아요?”
그레이는 웃었다. 옛날 생각이 나기에.
“근데 내가 진짜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
“뭔데요?”
“만약에 니가 진짜 땀을 흘렸다면, 언제고 잠시 멈춰도 돼. 그 물 어디 안가. 그러다가 다시 할 수 있을 때 다시 땀 흘려도 돼. 누가 왜 노력하지 않냐 지금 그만두면 아무것도 안된다. 이런 얘기들, 책임 없는 참견, 고민 없는 조언들. 싹 다 무시해. 너 하고 싶은 데로 마음 가는 데로 해. 그래도 되니까,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고 때로 잘못 선택해서 뒤로 돌아가도 되는 나이니까 어른들이 어리고 젊은 게 좋다고 하는 거야. 좋은 건 누려야지.”
“…그니까 간호조무사 그만 두라는 얘기에요?”
“…배 안 고프니? 밥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