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의 과학. K5=Science
어릴 적부터 그랬다.
누군가를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훑어봤다.
'눈매가 날카로운 사람은 왠지 차가울 것 같고', '입꼬리가 올라간 사람은 왠지 긍정적일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드라마나 영화 속 전형적인 악역 배우의 얼굴을 보며 '역시 관상은 과학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첫인상이라는 강한 자석에 이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짙어졌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겪으면서 나만의 '관상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 미팅에 들어선 순간,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꼼꼼하고 논리적인 스타일이겠군', '저 사람은 왠지 감정에 호소할 것 같아'. 물론 이런 예측이 늘 들어맞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예측이 맞을 때마다 그 경험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나만의 신념을 더욱 공고히 했다.
결정적으로 확신을 갖게 된 건, 일 때문에 만났던 한 거래처 사람 때문이었다. 첫눈에 봐도 날카로운 눈매에 굳게 다문 입술. 차갑고 계산적일 것 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순간, 16년 전 첫 직장의 상사였던 조 대리가 떠올랐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무뚝뚝한 표정이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태도, 모든 것을 철저히 따지는 일 처리 방식까지. 정말 데자뷔처럼 똑같았다. 그때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역시 관상은 과학이다.'
물론 종종 나의 예측이 빗나갈 때도 있었다. 예상과 달리 아주 따뜻한 사람도 있었고, 겉모습과 다르게 무척 감정적인 사람도 만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예외적인 경우는 통계적으로 극히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처음 느꼈던 직감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은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 생각하는 방식을 은연중에 담고 있는 강력한 단서였다. 얼굴에 써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대로 얼굴이 변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관상이 과학처럼 느껴지는 건, 우리의 뇌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특정 외모와 특정 성향이 연결될 확률'을 끊임없이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 직장 생활은 바로 그 경험적 확률의 표본을 늘려가는 과정이었다. 확률은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 100%의 진리는 아니지만, 내가 쌓아온 경험은 그 확률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오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읽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 감각이 든든한 경험적 통계라는 것을. 사람을 섣불리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편견이 아닌 통찰의 도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