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당연한 익숙함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
가끔 '경력직인 나의 가치는 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신입 시절의 열정은 희미해졌고, 하루하루는 비슷한 업무의 반복처럼 느껴진다. 엄청나게 새로운 기술을 쓰는 것도 아닌데, 회사는 왜 나에게 높은 연봉을 지불하는 걸까?
그 답을 뇌과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사는 나의 '의식'이 아닌 나의 '무의식'을 사는 것이다. 수만 시간의 경험이 뇌에 새겨 넣은, 그래서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져 버린 그 '익숙함'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신입 시절을 떠올려보자. ERP에서 간단한 발주 하나를 넣는 데도 매뉴얼을 몇 번씩 확인해야 했다. 해외 공급사와 메일을 쓸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긴장했다. 모든 업무가 뇌의 '의식'을 전부 동원해야 하는 힘겨운 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수백 개의 자재 코드는 눈에 익고, 복잡한 프로세스는 숨 쉬듯 자연스럽다. 뇌는 반복적인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이를 뇌과학에서는 좀비 시스템이라 부른다.
나의 경험은 지난 수년간 수많은 업무를 이 '좀비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수십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주간 수요 예측
문제 발생 시 연락해야 할 유관 부서 담당자들의 목록
매끄러운 물류를 위한 표준화된 프로세스 처리
이 모든 것이 이제는 특별한 의식적 노력 없이 '무의식'적으로 처리된다. 겉보기에는 '늘 하던 일'처럼 보이지만, 이 무의식적 능숙함이야말로 조직에 엄청난 안정성과 효율을 제공한다. 신입사원이 2시간 동안 쩔쩔매며 처리할 일을 5분 만에 실수 없이 해내는 것. 이것이 바로 회사가 돈으로 사는 경험의 첫 번째 가치, 즉 '무의식이 된 익숙함'이다.
경력의 가치는 자동화된 익숙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2021년 3월,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 좌초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당신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큰일 났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공급망 이슈를 겪어온 사람의 뇌는 즉시 '의식 컨트롤 타워'를 가동한다. 뇌는 이 사건이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에 영향을 미칠 '예측 오류' 신호임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수에즈 운하? 그럼 우리 유럽 법인으로 가는 부품 ETA가 최소 2주 이상 밀리겠군.'
'운송비가 폭등할 테니, 미리 대체 항공편을 알아봐야겠다.'
'영향받는 자재 리스트를 뽑아서 생산 및 영업팀에 즉시 공유해야겠다.'
이런 연쇄 반응을 예측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인지적 유연성'은 결코 책으로 배울 수 없다. 이는 과거 수많은 '예측 오류'(납기 지연, 품질 이슈, 재고 부족 등)를 의식적으로 해결하며 뇌에 새겨온 패턴이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해 보여도, 경험 많은 사람의 뇌는 이미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가장 안정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평온한 시기에는 '무의식'으로 조직을 안정시키고, 위기의 순간에는 날카로운 '의식'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경험의 두 번째 가치다.
가끔 나의 가치가 무엇인지 의심이 들 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의 가치는 단순히 '일을 오래 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그것은 수만 번의 반복을 통해 뇌에 구축한, 빠르고 정확한 '좀비 시스템'이며, 수백 번의 위기를 해결하며 얻은,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의식 컨트롤 타워'다.
결국 회사가 경력직에게 높은 연봉을 지불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서 스스로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그 무의식적 유능함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많은 주관성이 들어가기는 하나 당신의 익숙함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