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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마움

by 정용수

어떤 고마움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됩니다.

가족을 위해 새벽밥을 지어보면서,

아들을 군대에 보내보면서,

부모님의 상을 치러보면서.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보면서,

혼자 겨울 김장을 담아보면서,

뜻하지 않은 수술로 장기 입원을 하면서,

도로 한복판에서 차 시동이 꺼지는 경험을 하면서...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려왔던 일상의 삶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마운 수고와 희생으로

이루어진 일이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그 수고와 아픔의 자리에 서보면서

평범한 하루를 가능케 했던 감춰진 고마운 손들을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고마움들이 많습니다.

내가 힘들 때마다 기꺼이 먼 길을 달려와 준 사람들이 있고,

내가 잠 든 밤에도 깨어 간호해 준 사람들이 있고,

새벽마다 나의 이름 불러가며 기도해 준 사람들이 있고,

거센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그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고,

겨울 새벽에도 찬 물로 따뜻한 밥을 짓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때껏 내가 잘 나서 잘 살아온 것이 아님을

나이 들어갈수록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모쪼록 남은 날 동안 내 이웃들에게

세월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는

묵직한 고마움 한, 두 개는 남기고 떠날 수 있는

착한 인생이길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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