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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스빈 Jun 11. 2023

김치국밥과 계란밥

추억의 김치국밥



어린 시절 4형제의 막내로 항상 누나들과 형의 그늘 밑에서 살았었다.

학교 선생님을 하시던 아버지의 월급으로 모두 6 식솔의 배를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을 터다. 그래서 엄마는 하숙을 하셨고 하숙생들의 빨래며 청소 그리고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 주셔야 했다. 정작 당신의 자식들은 직접 본인의 도시락을 챙겨서 등교를 하였었다.

늦은 저녁시간이 되면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누나들과 형의 얘기 속에 나도 빠져들어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마땅히 야식거리가 없었던 그때 저녁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던 누나들과 형은 큰누나의 국밥 만들어 먹자는 말에 다들 동의했고 난 그저 가만있다가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시기였다. 냉장고라는 것도 없던 그 시절 주섬주섬 먹거리를 챙길 수 있는 거라곤 식은 밥과 김치 그리고 고구마 정도였을 거다. 그래서 만들어진 음식이 김치국밥이었다. 큰 누나의 지휘아래 형 누나들은 일사불란하게 야식을 준비했다. 드디어 동그란 알루미늄 탁자를 사이에 두고 양은냄비에 가득 끓인 김치국밥은 내게 있어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는 소중한 야식이었다.


4형제자매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호호 불어가며 먹던 그 국밥의 맛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뇌리에 그 시절 가장 맛나던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끔 집에서 그때 먹던 국밥이 그리워 만들어 먹어보지만 그때 그 추억의 맛을 100프로 소환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없던 시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4형제자매가 늦은 밤 모여서 만들어 먹던 그 추억의 맛이 지금도 그립다. 큰누나가 만들어 주던 그 국밥이 내 어린 시절 추억의 맛이었다면 내 딸아이에게 아빠와 함께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계란밥이 아닐까 한다.


엄마가 부재인 시간 딸과 둘이 있을 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 중 내가 유일하게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계란밥이었다. 달걀 프라이를 부치고 따뜻한 밥을 큰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방금 부친 계란을 올리고 거기에 간장 몇 스푼을 넣고 참기름과 깨를 뿌리면 먹음직 스런 계란밥이 완성이 된다. 쓱싹쓱싹 비비면 노른자가 터지며 노란 밥에 간장이 섞이면서 끈적한 밥알들이 완성이 된다. 그리고 한입 입으로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엄지 척이 되는 음식!


딸아이도 그런 맛을 알기에 같이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는 아빠가 해주는 계란밥이 맛있다며 은근 요리사 아빠가 되길 요구한다. 그래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니 부심을 가지고 요구만 하면 언제든 계란밥을 만들어 줄 생각이다.


어릴 적 큰누나가 만들어준 김치국밥의 추억처럼 딸에게도 추억에 남을 음식하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안도감이 드는 건 내 딸에게 아빠를 추억할 소재를 하나 만들어 가끔 아빠를 소환해 주기를 바라는 아빠의 바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때 그 시절 가물가물 남아있는 기억의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맞추어 가면 시간도 사라지고 공간마저 사라져 버렸지만 어렴풋이 떠오른 기억들만 아슬아슬 남아서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제야 소환된 기억들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이 되어 지나온 시절의 자취를 남긴다.


내 딸에게도  함께 만들어 먹었던 계란밥이 언젠가는 추억의 그림 한 장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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