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를 다시 만난 밤

한강 라이딩

by 청일

오늘은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로드를 꺼내 타기로 했다. 그동안은 주로 트라이폴드 자전거로 강아지 산책을 겸하다 보니 정작 로드에 오를 기회를 놓치곤 했다. 쫄바지를 입고 바람막이를 걸친 뒤 클릿슈즈를 장착하고 로드를 끌고 나왔다. 한동안 타지 않아서인지 바람이 빠져 있었고, 펌프로 공기를 채워 넣으니 출정을 위한 준비가 마침내 끝났다.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곧 해가 완전히 지면 가로등 불빛을 따라 달려갈 것이다.


하천을 따라 바람을 가르니 며칠 새 계절이 한층 더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봄에 벚꽃을 피워내던 나무들은 이제 색을 입은 잎들을 하나둘 떨어뜨리고 있었다. 지상으로의 마지막 비행을 마치면, 나무는 결국 잎을 모두 털어낸 채 앙상한 몸으로 겨울을 버텨낼 것이다.


왕숙천을 따라 구리 한강시민공원까지 달렸다. 오랜만의 로드라 아직 몸이 적응하지 못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삶은 계란 두 개와 바나나 우유를 집어 들었다. 묘하게도 어떤 날은 바나나 우유가 꼭 생각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계란과 우유를 순식간에 비우고 다시 안장에 올랐다. 서울로 들어설수록 강변에는 걷는 사람과 러너들로 붐볐고, 그 속에 합류하기만 해도 생기가 나를 감싸는 듯했다.

뚝섬까지 내달리며 한 시간 동안 시속 25킬로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이제 어디로 향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되돌아갈까, 태릉을 거쳐갈까, 아니면 더 나아가볼까. 결국 욕심이 고개를 들어, 반포대교까지 가보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잠수교 분수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마음을 밀어 올렸다. 한참 달리자 멀리서 오색빛을 머금은 물줄기가 연신 한강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힘이 솟아 더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시시각각 색을 바꾸며 춤추는 분수는 한강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잠수교 위에서 바라본 분수는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겼다. 나 역시 잠시 멈춰 감상한 뒤 다시 페달을 밟아 세빛섬으로 향했다. 그곳 역시 인파로 가득했고, 야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계단에 앉아 한 모금 물을 마시며 나도 잠시 야경에 취했다.

이제 귀환만 남았다. 성수에서 방향을 틀어 태릉을 거쳐 별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세빛섬에서 태릉까지는 쉬지 않고 달렸다. 기어를 높이고 속도를 올리니 비로소 로드의 진짜 속도가 몸에 스며들었다. 밤길이라 조심조심 추월을 해가며 페달링을 이어갔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에는 마지막 남은 힘이 불타올랐다. 드디어 태릉입구 갈림길에서 멈추는 순간, 헬멧으로 듣던 음악이 뚝 끊겼다. 아이폰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바람, 풍경,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진 나만의 세계가 허물어지는 듯 아쉬움이 밀려왔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했는데, 그만 오르막에서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기어를 올려둔 채 출발하다 보니 다리가 말을 듣지 못한 것이다. 세빛섬에서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다리가 이미 지쳐 있었으리라. 자전거는 시멘트 바닥에 긁혀 상처를 입었다.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아끼는 자전거에 난 흠집이 마치 내 상처처럼 아팠다. 왜 그 순간 왼발을 먼저 풀어내지 못했는지, 나이 탓에 반사신경이 둔해진 건 아닌지, 아쉬움과 후회가 몰려왔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번 라이딩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했다. 멈출 땐 기어를 풀어놓을 것. 오르막에서 출발하지 말 것. 단순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원칙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별내를 향한 나의 밤 라이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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