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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만원의 강아지

젤로 사랑스런 강아지

by 청일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육백만원의 하루


국민학교 시절,

학원도, 공부 스트레스도 없던 그 시절의 유일한 오락거리는 텔레비전이었다.

인형극과 만화, 그리고 미국 드라마들이

어린 마음에선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일들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흑백 화면이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세상은 언제나 반짝였다.

컬러 텔레비전의 존재조차 모르던 때라

화면의 색보다도 그 속의 이야기들이 더 중요했다.


신학기가 되면 친구들과

“너희 집엔 텔레비전 있니? 냉장고는? 전화기는?”

서로 호기심 섞인 호구조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박봉 속에서도

네 남매를 위해, 그리고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위해

기어이 텔레비전과 커다란 전축을 들이셨다.

LP판을 올려놓고 음악을 들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생생하다.

지금도 그 LP판은 아버지의 유산처럼

내 곁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즐겨봤던 드라마는

육백만불의 사나이(The Six Million Dollar Man)였다.

그리고 그와 짝을 이루던 소머즈(The Bionic Woman)도 있었다.


우주비행사 스티브 오스틴이 임무 중 사고로 다친 뒤,

몸의 일부를 기계로 이식해 초능력을 얻는 이야기.

그가 한 손으로 자동차를 들어올릴 때마다

“치치치치-” 하는 특유의 효과음이 흘러나오면

온몸이 짜릿해졌다.

슈퍼맨도 보기 전이던 내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웅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우리 집에도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있다.

아니, 육백만원짜리 강아지 하루가 있다.

담낭 절제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돌아온 하루.

초능력은 없지만,

다시 뛰고, 먹고, 꼬리를 흔드는 그 모습만으로도

기적 그 자체다.


목욕도 못해 꾀재재하고 냄새도 나지만,

지금 하루는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값진 존재다.

육백만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귀한 생명이다.


오래오래,

그 비싼 값보다 더 큰 사랑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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