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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을 따라 달렸다

가을 라이딩

by 청일


오랜만에 페달을 밟으려 작은 자전거를 꺼냈다. 먼 길이지만 로드를 선택하지 않은 건, 오늘의 마음과 어울리는 옷차림 때문이었다. 여럿이 함께라면 괜찮을 복장도, 혼자일 땐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은 작은 자전거로 조용히, 나만의 속도로 가보기로 했다.

중랑천 뚝방길

광화문까지는 처음 달려보는 길이었다. 네비는 태릉을 지나 중랑천을 따라가다 한양대 부근에서 청계천으로 오르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막상 길에 들어서니,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 통행금지 표지가 걸음을 막았다. 잠시 자전거를 끌고 청계천 옆 도로로 올라섰고, 그제야 다시 부드럽게 페달을 밟았다.

예상보다 길은 잘 닦여 있었다. 처음 가보는 길을 스스로 찾아가며 달리는 일은 묘하게 설렜다. 낯선 길이지만, 그 낯섦이 주는 활기가 있었다. 이어폰에서는 안전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작은 볼륨으로 음악이 흘렀고, 그 음악이 바람과 함께 몸에 스며들었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가을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분명해졌다. 직장인들의 빠른 걸음, 광화문을 찾은 여행객들의 느긋한 표정, 경복궁과 서촌으로 흘러가는 인파까지. 모든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계절을 누리고 있었다. 경복궁 앞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자 서촌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길 위에는 이미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은행잎이 가득 깔린 길 위에서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서로의 가을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도 그 풍경 안에 잠시 머물며 한 장을 남겼다. 찬바람이 스치며, 오늘의 이 노란빛이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경복궁 은행나무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이 떠올라 정동으로 향했다. 좁은 자전거길을 따라 조용히 올라가니, 이곳에도 가을이 고요히 피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걸었고, 나는 그들 곁을 천천히 지나쳤다. 고종의 길을 잠시 올랐다가 다시 청계천 옆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에 들어서자,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점심 한 끼 챙기지 못하고 달린 탓에 몸은 조금 무거웠지만, 그마저도 오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마 한동안 쉬었던 시간이 남긴 여운일 것이다. 그렇게 왕복 60키로의 라이딩은 가을의 여운과 함께 마무리를 했다. 겨울이 오면 이런 라이딩도 잠시 멈춰야겠지만, 실내 자전거로라도 몸의 리듬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가을을 온전히 품은 채, 올해의 마지막 가을 라이딩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마지막 노란빛이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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