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나무
천년의 나무 앞에서
천년을 살았다 한다.
무려 천년을.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세월을 버텨온 은행나무 한 그루.
노란 옷을 두른 채 햇빛 속에 우뚝 서 있는 그 나무 앞에서 나는 말없이 숨을 고르며 바라보았다.
감탄과 함께 경외감이 밀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 나무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무는 더욱 위대해 보였다.
오라 손짓하지 않아도, 그 앞에 서고자 마음먹은 이들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그저 묵묵히, 조용히 햇빛을 받아 서 있었다.
아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았을 것이다.
비바람, 천둥과 번개, 폭설과 폭우 속에서도 묵묵히 버티며 천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견뎌왔을 것이다.
어찌 이 나무 한 그루에 마음이 사무치지 않겠는가.
오늘 나는 그 천년의 침묵 속에서 천년의 세월을 가늠해본다.
고뇌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다만 버텨온 세월.
나도 그렇게 묵묵히 살아내고 싶어졌다.
360도 모든 각도가 그의 얼굴이었다.
햇빛을 가득 머금은 얼굴,
그늘에 잠긴 얼굴,
수줍은 듯 은행잎으로 몸을 가린 얼굴까지.
나는 탑돌이하듯 그를 한 바퀴 돌았다.
각도마다 다른 표정을 지닌 나무는 마치 한 사람의 생애처럼 느껴졌다.
머지않아 잎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겠지.
그럼에도 그 나무는 다시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면 또 작은 새싹 하나를 틔워낼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또 한 해를 살아낼 것이다.
눈 쌓인 그를 보러, 나는 다시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