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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여인

윤덕희

by 청일



1. 작가소개.

윤덕희(尹德熙, 1685~1766)


윤덕희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서민의 정서와 일상적 풍경을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그는 특히 인물화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인물의 내면을 담백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자연스러운 선과 은은한 색감을 사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조용한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2. 작품설명


그림 속 여인은 고요한 정원 한켠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배경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큰 잎사귀와 꽃가지가 드리워져 있어 자연의 숨결이 은근하게 스며 있다. 여인은 책장을 넘기듯 손끝을 가볍게 걸쳐 놓고, 고요한 미소를 띠며 깊은 집중의 세계에 들어가 있다.

전통 복식의 흐르는 주름, 단정한 상투머리, 그리고 정제된 몸짓이 그녀의 단아함을 돋보이게 한다. 그림은 마치 “책을 읽는 순간, 세상과의 문이 잠시 닫힌다”는 것을 조용히 말하는 듯하다.


3. 나의 감상


세상은 결국,

내가 어떤 경험을 축적해 왔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 경험이 시간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면

우리는 그것을 ‘연륜’이라 부르고,

그 연륜은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렌즈가 된다.


몸으로 겪어 쌓은 경험이 있는가 하면,

책 속에서 조용히 얻어지는 경험도 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모든 생각, 모든 세계관을 직접 만나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독서는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드문 사유의 도구이다.


그림 속 독서하는 여인은

바로 그 사유의 힘을 품고 있다.


단정한 단아함 속에서

그녀는 한 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끝으로 글을 짚어가며 천천히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고요한 순간,

그녀의 내면은 미묘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결국 그녀의 세계를 확장시켰을 것이다.


독서는 지식을 쌓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형태를 조금씩 갱신해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생각을 빌려

나의 경계를 확장하고

내면의 우주를 다시 그리는 일.

그 과정은 감성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누군가는 독서를 취미라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다.

독서는 시간을 쓰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깊게 만드는 일이다.

내 삶의 결을 다져주고

사물과 자연을 더욱 섬세하게 바라보게 하는 밀도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펼친다.

그녀처럼, 조용히.

한 페이지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설렘으로.

그녀의 고요한 모습과 마찬가지로

독서는 소란스럽지 않지만

한 인간의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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