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가성비

독서의 기쁨

by 청일



오래전부터 나는 연말이면 다이어리를 한 권씩 구입했다. 새해의 계획과 포부로 첫 장을 장식하지만, 연말이 될 때까지 그 구상이 온전히 이루어진 해는 없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달랐다. 12월 31일의 마지막 장까지, 하루의 일과를 되돌아보는 기록을 빠짐없이 남겼다. 스스로 꽤 대견한 일이었지만, 실은 남다른 이유가 한몫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기억을 더듬는 일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이후 기록은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이유가 다소 불손할지언정, 매일을 돌아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새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 해는 기록으로 남았다.


돌아보면 작년의 독서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게으름이 가장 컸다. 즐겨 사용하는 도서 구매 앱에 읽고 싶은 책들을 한가득 찜해 두고는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결제를 했고, 어제 그 책들이 도착했다.


무언가에 애착을 갖고 돈을 쓰고 나서, 그에 합당한 만족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금세 싫증이 나기도 하고, 더 나은 가성비 앞에서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비에는 언제나 비교와 검증이 따른다. 무엇보다 가성비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빵 순례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적은 금액으로 충분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일명 ‘소확행’. 큰돈이 들지 않아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인생의 행복 중 으뜸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책만큼 가성비 좋은 소비도 드물다. 책값이 많이 올라 한 권에 이만 원을 육박하지만, 그 정도의 금액으로 며칠 동안 사유의 확장을 누릴 수 있다면 결코 비싼 값은 아니다.


새해 첫날, 어제 받은 네 권의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시 한 편, 에세이 한 편이 건네는 사유의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올해는 읽고 싶은 책을 조금 더 많이 읽으며 독서의 기쁨을 누려볼 생각이다. 미뤄두었던 계획들도 차근차근 진행해, 돌아봤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말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