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
1. 작가 소개
이대원 (李大源, 1921–2005)
이대원은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연을 구조로 바라본 화가’라 불린다.
그의 작업은 실제 풍경에서 출발하지만, 눈앞의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산과 들, 나무와 마을을 리듬과 색, 반복되는 형태로 환원해 화면에 옮겼다.
특히 말년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무 연작은
자연을 관조의 대상이자 존재의 질서로 바라본 그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대원의 자연은 감정을 위로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구조와 질서를 드러낼 뿐이다.
2. 작품 설명
이 작품 속 나무는 한 그루의 특정한 나무라기보다
‘나무라는 존재 전체’에 가깝다.
굵은 줄기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들은 마치 삶의 갈래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며 반복되고 확장된다.
색채는 사실적이지 않지만 생생하다.
붉고 푸른 색면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리듬은
자연이 가진 시간의 켜, 계절의 흐름, 축적된 세월을 암시한다.
이 나무는 흔들리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그저 오래 서 있었고, 앞으로도 서 있을 존재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나무는
누군가의 고통을 위로하지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무심함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인간의 감정을 삼키지 않고
그대로 두어 주기 때문이다.
3. 나의 감상
나무는 거기, 그 자리에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수백 년 전부터
처음 뿌리내렸던 그곳에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
볕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고,
뿌리는 아래로, 옆으로 스며들며
땅의 기운을 받아낸다.
위로도, 아래로도, 옆으로도
조용히 자신을 넓혀왔다.
그 곁을 우리는 지나치고,
때로는 멈춰 서서 바라본다.
사계절의 변화를 나무를 통해 발견하고
잎의 색과 가지의 선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나무는 말없이 서 있지만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날마다 다르다.
침울할 때도 있고
고독한 날도 있으며
행복하거나 기쁜 얼굴로
그 앞에 설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아도
나무는 늘 같은 침묵으로
우리의 시선을 받아낸다.
그 침묵은
위로하려 들지 않고
설명하지 않으며
괜찮아질 것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된다.
말없이 서 있는 나무 앞에서
나는 강해지지 않아도 되고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아도 된다.
그저 서 있거나,
잠시 기대거나,
가만히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침묵 속에서
오래된 나무의 기운이 스며들어
마음에 쌓인 무거움 들은
조금씩 옅어진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
서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흔들리던 내 마음은
각자의 속도로
다시 제 자리를 찾는다.
누군가는 바로 서고
누군가는 기대어 쉬며
누군가는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무는 그 모든 자세를
같은 침묵으로 받아낸다.
그래서 이 나무 앞에서
나는 버텨야 할 이유를 내려놓고
당신은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해결해주지 않기에 재촉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머물 수 있는 자리.
나무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