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운성
1. 작가 소개
한운성 작가는 일상의 언어와 시각적 기호를 통해
‘지금-여기’라는 존재의 좌표를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온 작가다.
그의 작업은 복잡한 삶의 구조를 단순한 형식으로 환원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선택의 문제를 정교하게 담아낸다.
미로, 표식, 문장과 같은 반복적이고 익숙한 형식은
작가에게 사유의 도구다.
한운성은 이를 통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보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는다.
그의 작업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가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는 순간,
작품은 완성된다.
2. 작품 설명
현재 위치 You are here
이 작품은 미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화면 중앙에 단 하나의 문장만을 남긴다.
YOU ARE HERE.
이 문장은 방향도, 해답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이라는 순간,
현재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킬 뿐이다.
복잡하게 얽힌 길들은
전진과 후퇴, 선택과 망설임이 반복되는
인생의 구조를 닮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미로 안에서 ‘잘못된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되돌아가는 길도, 막다른 길도
모두 현재로 이어지는 과정의 일부다.
작가는 이를 통해
길을 잃는다는 개념 자체를 다시 묻는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로 나아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좌표를 확인하는 행위이며,
삶의 방향은 그 인식 이후에야 비로소 생겨난다.
〈현재 위치 You are here〉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신을 증명하려는 현대인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3. 나의 감상
잠시 멈춤의 자리
바람이 투명하듯
인생의 항로 역시 보이지 않는 길이다.
유령 같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알 수 없음의 연속이다.
출발의 총성은 모두에게 동시에 울리지만
그 이후의 행로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이는 뒤돌아가며,
어떤 이는 멈춘다.
또 어떤 이는 잠시 Pause를 눌러
자신의 숨과 속도를 확인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묵묵히 앞을 향해 걷는다.
가고, 멈추고,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그 모든 선택이
결국 인생이라는 하나의 길을 이룬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here를 찾아간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끝내 다시 ‘앞’을 향하게 되는 마음이다.
세월을 앞세운 채
우리는 나그네가 되어
길 위에서 나이를 먹는다.
그러다 문득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잠시의 휴식을 허락한다.
나는 그런 Pause가 참 좋다.
완전한 정지가 아닌,
잠시 멈춤.
이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여백이다.
숨 쉴 공간을 만드는 일이고,
다시 나아갈 힘을 비축하는 일이다.
그 멈춤 덕분에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고,
대지를 박차고 오르는 어린 새싹을 발견하며,
겨울을 견딘 나무 끝에서
돋아나는 여린 새순을 본다.
앞으로 달려가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때로는 멈춰 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 큰 용기다.
내 삶에 멈춤의 시간이 많다는 것은
나를 더 다독이는 일이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here를 확인한다.
숨을 고르고,
다시 향해야 할 방향을
조용히 찾고 있는 중이다.
미로의 중심에 서서
바라보면
길을 잃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모두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