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
1. 작가 소개
김점선 (Kim Jeomseon, 1946–2009)은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상을 통해 감정과 생명감을 표현한 한국 현대미술 작가이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사실적 재현보다는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표현 방식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말, 호랑이, 인물 등 반복되는 도상은 서사보다는 정서와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로 사용되었다. 그의 작업은 기교보다 표현의 진정성과 즉각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2. 작품 설명
〈빨간 말〉은 김점선의 대표적 도상인 ‘말’을 단순화된 형태로 제시한 작품이다. 사실적 묘사를 배제하고 평면적 구성과 강렬한 붉은 색채를 통해 대상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강조한다. 색과 선은 외형을 재현하기보다 감각과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조형 언어로 작동하며, 구체적 서사를 제시하지 않고 관람자의 해석에 열려 있는 구조를 지닌다.
3. 나의 감상
적토마의 심장으로 다시 쓰는 지도
계획은 언제나 실행을 담보하지 않는다. 어떤 계획은 머릿속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다 소리 없이 지고, 어떤 계획은 간신히 싹을 틔워 결실을 맺기도 한다. 우리는 늘 다짐이라는 문장을 쓰며 살아간다. “무엇을 할 거야”, “어디로 갈 거야”라며 수많은 목적지를 지도 위에 찍어 누르지만, 정작 그 목표를 향해 걷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길을 잃고 마는 것이 우리네 삶의 익숙한 풍경이다.
연초에 세웠던 체중 감량의 목표도 그랬다.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의지는 흐릿해졌고, 결심은 미풍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허지부지되었다. 결국 삶을 바꾸는 것은 유려한 백 마디의 계획이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끝내 발을 내딛는 단 한 번의 실행력이다. 만약 내 생의 모든 계획이 실행으로 이어졌다면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좌표 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처 다 이루지 못한 미완의 다짐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인간적인, 그래서 더욱 진실한 나의 초상이다.
올해도 나는 어김없이 흰 종이 위에 다짐들을 적어 내려갔다. 독서의 양을 가늠하고, 운동의 강도를 정하며, 새롭게 마주한 카메라 렌즈 너머의 세상과 그것을 묶어낼 출판 계획까지. 한 해가 저무는 지점에 어떤 마침표가 찍힐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궤적을 그리는 일만큼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동안 미뤄온 일들을 ‘다음’이라는 이름으로 기약해왔던 것은, 어쩌면 내일이 영원할 것이라는 오만한 믿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재도전의 기회가 눈에 띄게 줄어든 지금, 계획의 의미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간절해졌다. 이제야 ‘언젠가’는 ‘지금’의 다른 이름임을 깨닫는다.
회갑. 태어난 해의 간지가 다시 돌아오는 나이, 육십갑자의 시간을 한 바퀴 살아낸 자리다.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보니, 지금 이 순간 건강하게 숨 쉬고 있음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삶은 성적표가 아니라는 것, 얼마나 이루었는가보다 얼마나 충실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나이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가꾸어야 할 의무가 된다. 젊은 날엔 공기처럼 존재하던 것이, 이제는 정성을 들여야 지켜지는 귀한 조건이 되었다.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제 발로 서고 싶다는 소망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육십갑자의 강을 건너온 나의 생을 돌아본다. 실패와 후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모든 순간은 지금의 나를 이루는 무늬가 되었다. 이제 다시 맞이한 삶 앞에서는, 지나온 시간이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더 깊이 사유하고, 더 넓게 품고, 더 따뜻하게 사랑하며.
오늘, 캔버스 위에서 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적토마를 바라보며 다시 신발 끈을 묶는다. 속도는 느릴지언정 방향을 잃지 않고, 멈추지 않는 말처럼. 그 고동이 나의 심장과 겹쳐지는 순간, 나의 인생 2막은 조용히 첫발을 내딛는다.
회갑, 다시 돌아온 시작점에서 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그리고 조금 더 진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