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코 록카쿠
1. 작가 소개 Ayako Rokkaku, 1982~
아야코 록카쿠는 일본 출신의 현대 미술가로, 손으로 직접 물감을 바르는 핑거 페인팅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붓이나 도구보다 손의 감각을 믿는 그녀의 작업은 즉흥적이면서도 본능적이며,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 시간,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큰 눈을 가진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보다, 세상을 처음 바라보는 존재, 질문과 감각이 열려 있는 상태를 상징한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선, 겹겹이 쌓인 물감의 흔적은 계산보다 감각을, 의미보다 경험을 우선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아야코 록카쿠의 작업은 세계 여러 미술관과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으며,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의 힘’을 회화로 증명해 온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2. 작품 설명
이 작품은 제목 없이 ‘무제’로 남겨져 있다. 이름 붙이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해석의 방향을 관람자에게 온전히 내어준다. 화면을 가득 채운 강렬한 색채는 꽃, 바람, 비, 계절, 감정이 뒤섞인 하나의 생명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형상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흐름이 있고 리듬이 있다.
커다란 눈을 가진 인물은 화면 속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 질문하는 듯하면서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주변을 감싸는 색들은 자연의 변화처럼 격렬하면서도 조화롭다. 이는 질문과 혼란, 그리고 그 너머의 수용을 동시에 품고 있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은 이해의 대상이기보다, 받아들임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보이는 세계, 그 조용한 충만함을 이 작품은 색으로 보여준다.
3. 나의 감상
무엇이든 궁금했고, 질문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소위 학문이라는 이름의 배움을 통해 지식의 성을 쌓아갈 때에도, 머릿속의 질문들은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세상을 다 알아야만 비로소 나의 삶이 완성될 것 같던, 치기 어린 열망의 시기였다.
어느덧 한 갑자(甲子)의 세월을 건너와 보니,
그토록 무성하던 질문들은 마른 잎처럼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수용’이라는 단단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제 “왜?”라는 물음은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대신 자연의 이치 앞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정적의 순간들이 늘어났다.
누군가와의 다툼조차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너른 마음으로 흘려보낸다.
생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오갔던 수많은 감정의 격랑들이 결국은 본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고요한 수평선이 남듯,
마음에서 힘을 빼자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평화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봄꽃을 보며 “왜 피어나는가”를 묻는 대신,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그 엄연한 사실 앞에서 깊은 감사를 느낀다.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는 물론이요,
때로는 필요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불어올 때조차
자연의 섭리 앞에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대지는 비를 머금어야 살고,
숲은 바람을 맞아야 깊어짐을 알기에.
어쩌면 삶이란,
수많은 질문으로 시작해
깊은 순응으로 마무리되는
하나의 ‘수용의 여정’ 인지도 모르겠다.
낯익은 이름을 깜빡 잊어버리는 일들조차
서글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더 본질적이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뇌가 베푸는 자연스러운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러려니”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그 여유야말로,
예순 해의 시간을 통과해 온 이가
곁에 두어야 할 가장 고결한 지혜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
그것이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임을
이제는 안다.
억지로 물길을 돌리지 않고,
인위의 힘을 덜어낸 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
비로소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때,
우리의 삶은 가장 온전하고 아름다운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