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추니박

by 청일


1. 작가 소개


추니박은 거대한 자연과 그 안에 놓인 작은 인간의 모습을 통해 존재와 시간, 그리고 침묵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그의 화면에는 종종 협곡과 절벽처럼

오랜 시간이 축적된 풍경이 등장하고,

그 안에 아주 작게 한 인물이 놓인다.

이 인물은 주인공이기보다

관객의 시선을 대신하는 존재에 가깝다.

얼굴도, 방향도 분명하지 않은 그 모습은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추니박의 작업은 설명을 앞세우지 않는다.

강렬한 색과 선명한 형태를 사용하면서도

감정을 단정하지 않고,

침묵이 머무를 여백을 남긴다.


이 작가는 인간이 자연과 시간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러나 그 작음 속에 얼마나 깊은 사유가 깃들 수 있는지를 일관된 시선으로 탐구한다.


2. 작품 설명


이 작품은 압도적인 협곡 사이에

작게 서 있는 한 인물의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양쪽으로 치솟은 암벽은 오랜 시간의 압축처럼 단단하고, 그 사이를 흐르는 길은 삶이라는 시간의 통로를 연상시킨다.


인물은 앞으로 나아가는 중인지,

잠시 멈춰 선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모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머무는 자리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말없이 서 있고,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더듬어 묻게 된다.

작품에 흐르는 색채는 강렬하지만 과하지 않고,

선은 분명하되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이는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유하게 하는’

작가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3. 나의 감상


내가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표정으로 말을 건네온다.


깊은 계곡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사방은 깎아지른 절벽과 빽빽한 숲에 가로막힌다.

그 안에서는 이 길의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버겁다.

반면 숨 가쁜 비탈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시야는 비로소 막힘없이 트인다.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길을 잃었다는 불안은 서서히 잦아든다.


새의 눈으로 세상을 굽어보는 ‘조감(鳥瞰)’의 시선.

어쩌면 삶의 가장 귀한 지혜는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전체를 관조할 수 있는 그 높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어둡고 습한 계곡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을 통과하게 된다.

세월이라는 긴 강을 건너오며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서서 바라보느냐’라는 사실이다.


그때는 생사가 걸린 문제처럼

고군분투하며 매달렸던 일들도

삶이라는 거대한 산맥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그저 ‘그럴 수도 있었던 일’이 된다.

결국은 시간이 흘려보낼

하나의 물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서늘한 깨달음은

이제 막 세월의 강가에 선 이들에게는

쉽게 닿지 않는 문장일 것이다.

그것은 책장에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돌밭길에 부딪히고 깨지며

몸으로 새겨 넣은

‘세월의 훈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계곡의 돌길을 빠져나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능선에 올라본 사람만이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풍경.

그것은 오직 시간을 견뎌온 자에게만

허락되는 깨달음이다.


나는 이제 능선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아래의 소란스러운 일들이 한결 담담해 보이고,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가만히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마음에 깊은 고요가 찾아온 것이다.


물론 삶은 여전히

불규칙한 바람을 보내고

물결을 일렁이게 하겠지만,

이 또한 잠시 머물다 가는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그리고 다정하게.

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이 마음의 여유를

나는 이제 놓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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