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에 다시 올 거야

이우성

by 청일


1. 작가 소개


이우성 작가는 관계와 시간, 그리고 기억의 풍경을 회화로 풀어내는 작가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관객을 등진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는 특정한 사건보다는 함께 지나온 시간과 감정의 결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우성의 회화는 화려한 서사 대신, 삶의 어느 순간 문득 멈춰 서서 돌아보게 되는 **‘공유된 시선’**을 통해 우정과 애정, 그리고 지속되는 관계의 가치를 조용히 환기한다.

그는 풍경을 배경으로 삼되, 그 풍경이 곧 인물의 내면이 되도록 구성하며, 색채와 빛을 통해 기억의 온도를 섬세하게 조율한다.


2. 작품 설명

나는 이곳에 다시 올 거야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여인이 나란히 서서 황혼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같은 방향, 같은 빛, 같은 풍경을 공유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저물어 가는 태양이 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그 빛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다.


붉고 푸른 색채가 겹겹이 쌓인 하늘은 하루의 끝이자 인생의 한 구간을 상징하고,

산과 숲, 멀리 보이는 도시의 실루엣은 각자의 삶이 흘러온 시간을 은유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배경 위에서 인물들은 말없이 서 있다.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관계처럼.


이 작품은 우정에 대해 묻는다.

모든 우정은 형태를 바꾸거나, 때로는 멀어지기도 하지만

함께 바라본 순간들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나는 이곳에 다시 올 거야’라는 제목은 장소에 대한 약속이자,

관계에 대한 다짐처럼 읽힌다.


우정이란 늘 함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같은 기억을 품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임을 얘기하고 있다.


3. 나의 감상

같은 시선으로 머무는 자리


세상을 살아가며 누군가와 같은 시선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나란히 서서 함께 바라보는 뒷모습이 더 깊은 힘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세 여인이 나란히 서서 황혼을 바라보고 있다. 저물어 가는 해의 잔광이 그들의 얼굴에 따스하게 스며들고, 세상은 온통 붉은빛으로 일렁인다. 그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친구의 얼굴에 패인 주름을 바라보는 마음은 내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애틋하고도 안쓰럽다. 그래서일까. 추억을 공유한 이들과 여행지에서 맞이한 황홀한 풍경은 언젠가 다시, 꼭 함께 보고 싶은 영원한 장면으로 남는다.


내게도 그런 풍경이, 아직 지키지 못한 약속 하나가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우리 가족은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고, 함께 바라본 선셋은 마치 화보 속 풍경처럼 눈부셨다. 석양으로 물든 바다 위로 하얀 돛단배들이 줄지어 떠 있던 그 정물 같은 장면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그날, 해변의 젖은 모래 위에 딸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글자를 적었다.

“다시 꼭 올게.”

아이는 내게 약속을 구했고, 나 역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함께 보고 싶은 마음에 “다음에 꼭 같이 오자”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어느덧 서른이 된 딸아이의 곁에서, 그 약속은 여전히 마음의 부채로 남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곳을 스쳐 지나간다. 여행으로, 혹은 일로 만나는 수많은 장소에서 우리는 ‘여긴 꼭 다시 와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수천 번 다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세상은 너무도 넓고, 아직 가보지 못한 낯선 풍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다시 오고 싶은 장소’를 하나둘 쌓아가는 일은 분명 삶의 활력이 된다. 비록 다시 찾지 못할지라도, 한 번이라도 그 찬란한 풍경을 함께 바라보았다는 경험만으로도 삶은 충분한 의미를 얻는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우유니 사막의 거울 같은 소금밭 위에 서보고 싶고, 북극의 시린 하늘을 수놓는 오로라를 직접 마주하고 싶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 낯선 풍경들 속으로 기꺼이 걸어가 보려 한다.


언젠가 다시 보라카이의 노을 앞에 설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서른의 딸과 나이 든 나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까. 비록 약속은 조금 늦어졌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 우리의 노을은 더 깊은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올 것을 믿으며, 나는 오늘 하루도 조용히, 그러나 성실하게 나의 자리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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