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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Sep 29. 2024

그 여름에 대한 낙천성

교차로 앞

폭염을 앞세우고 걷는다

마천루 창문들이 굳게 닫혀있다

이런 날은

빛 광(光)과 미칠 광(狂)의 차이가 없다는 생각

신경세포와 8분 전의 태양 때문에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슬그머니 믿어본다


그림자도 말라가는 오후

일회용 컵 흔들며 앞서가던 사람

메트로놈 소리 한껏 내더니

남은 얼음알갱이 

아스팔트 도로 위로 힘껏 뿌린다

열평형이 소원은 아닐 텐데

무더위에 대한 특별한 태도라고

중얼거려 본다


그때 

이상하게도 

사각 창문들은 건반이 되어

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연달아 반짝거렸다

구름이 익숙하게

건물들 사이 바삐 지나고 

일제히 세워진 키보드 피아노들

건반은 사각형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악보가 된 하루는

어느새 겨울바람*을 연주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아무 일 없는데

떨어지는 노란 잎 하나에

화들짝 놀란 가로수들이 

만일에 대비하여 

초록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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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 에튀드 Op.25 N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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