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앞
폭염을 앞세우고 걷는다
마천루 창문들이 굳게 닫혀있다
이런 날은
빛 광(光)과 미칠 광(狂)의 차이가 없다는 생각
신경세포와 8분 전의 태양 때문에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슬그머니 믿어본다
그림자도 말라가는 오후
일회용 컵 흔들며 앞서가던 사람
메트로놈 소리 한껏 내더니
남은 얼음알갱이
아스팔트 도로 위로 힘껏 뿌린다
열평형이 소원은 아닐 텐데
무더위에 대한 특별한 태도라고
중얼거려 본다
그때
이상하게도
사각 창문들은 건반이 되어
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연달아 반짝거렸다
구름이 익숙하게
건물들 사이 바삐 지나고
일제히 세워진 키보드 피아노들
건반은 사각형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악보가 된 하루는
어느새 겨울바람*을 연주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아무 일 없는데
떨어지는 노란 잎 하나에
화들짝 놀란 가로수들이
만일에 대비하여
초록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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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 에튀드 Op.25 No.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