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근 키우기

by 플레이아데스

긴 목을 절단하는 느낌

16:9 화면 속 묘한 목소리

꽃대는 단번에 자르라고

손등의 도드라진 핏줄

어차피 헤어질 마음이라면

지고 있는 꽃이

우리의 헤어짐이

최대한 밑동 가까이 너를 이루는 것들에


울컥한 자리

꽃은 조용히 말라간다 치더라도

오래된 메아리는 그냥 두어야 하나

상처가 알뿌리로 굵어질 때까지

당분간 너무 많은 눈물은 금물이겠지


늘 배후에 있던 4월이

가벼운 꽃잎 되어 한참이나 날아가

그렇게 퇴화할 줄 모르고

잊히는 것에 익숙하지만

해마다 구근은 돌아오고

버려진 줄 알았던 감정이

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

암호가 되어 어디엔가 남아 있을 때


한 번에 자르기 힘들다면

그냥 두어도 괜찮아요

꽃과 꽃대가 쪼그라들 때까지

울음이 누렇게 익을 때까지


TV 스크린 가득

노란 입을 일제히 벌린 채 길게 누운 수선화들

창밖에는

묵념하듯

조용히 봄비 내리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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