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

by 플레이아데스

비가 오면 솔방울은 오므라든다. 나무에 달려 있거나 땅에 떨어져 있어도 마찬가지다. 구과(毬果) 비늘의 안과 밖이 바이메탈처럼 습기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씨앗을 다 날려 보냈다면 진화에서 이제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런데도 솔방울은 생명이 있을 때처럼 습도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번식의 사명이 다 끝났는데도 굳이 그것을 몸에 새길 필요가 있을까.

최근에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세상(원제: Helgoland)’을 읽었다. 저자는 양자론을 관계론적으로 해석했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솔방울의 생명이 빠져나가도 시간을 몸에 기억하고 여전히 세상과 관계 맺고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남겨진 사람들이 그와의 시간을 추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인이 갑자기 고인이 되었다. 불법 유턴 하던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 사람의 우주가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서로 위로하며 각자를 추스르느라 비 맞은 솔방울처럼 둥글게 몸을 쪼그리고 있다. 슬픔의 파동이 서로 주고받으며 번져간다. 그전보다 더 커져 버린 세상이 위태롭게 출렁거린다.

그는 사람을 사랑한 것처럼 자연을 사랑했다. 산과 바람을 누비며 그렇게 또 강렬하게 인생을 사랑했다. 그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가 떠나며 남긴 슬픔의 크기는 확실하게 안다. 가족이 오랫동안 겪어야 할 고통과 머물러야 할 깜깜한 동굴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상실 후에 겪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각자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떠오르는 삶과 고통에 관한 질문은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되묻곤 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오르락내리락하던 파도는 점차 잔잔해지고 세상은 여전히 무심하게 돌아간다.


도서관과 대학교의 연계 사업 덕분에 얼마 전부터 모교 도서관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자료실 출입증을 발급받은 날, 설레는 마음으로 교정에 발을 디뎠다. 예상했던 대로 많이 변해 있었다. 문들은 개방되었고 깔끔한 공원도 생겼다. 담장도 사라지고 동네 주민의 쉼터로도 그 역할을 성실히 하고 있었다. 경계를 지워 이쪽과 저쪽을 나누던 시절이 사라졌다.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라는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을 이어주는 관계는 더 풍성해졌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의 내용이 다시 한번 스쳐 갔다. 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었다. 수십 년 전 오르내리던 도서관 계단, 법대 앞 플라타너스 거리, 중앙 분수대, 그리고 내가 사랑한 밤하늘의 별도 그대로 이리라. 출입증을 찍고 자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엄청나게 많아진 책이 보였다. 예전의 나무 책꽂이 대신 앵글로 된 수납장도 깔끔했다. 솔방울이 자신의 몸에 과거를 새긴 것처럼 인간의 시간은 책으로 남겨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서적들은 각자의 청구기호를 가지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은 떠나도 책으로 남아 이 세계가 계속되고 있었다. 인간의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듯했다.


도서관을 나오는데 풀밭 여기저기에 떨어진 솔방울이 보인다. 그 전날 비가 온 탓에 솔방울이 닫혀 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든다. 날씨도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반복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솔방울처럼 펴졌다가 오므라들기를 반복한다. 하루하루 루틴을 따라 살아가면서도 한 번씩 몰아치는 삶의 폭풍우 앞에 솔방울처럼 유연하게 받아들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지인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숙제는 늘 진행형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삶은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이니까.


한결 낮아진 바람 온도에 감사하며 발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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