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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Mar 31. 2023

한번 팬은 영원한 팬

“울어? 왜 울어?” 그가 처음으로 내게 건넨 말이었다. 울기만 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저 눈물만 났다. 그는 내 팔을 잡고, 옆에 있던 소파에 나를 앉혔다. 함께 온 친구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신나게 대화를 나누었다.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20분쯤 지났을까. 경호원이 다음 무대를 준비해야 하니 이제 나가달라고 했다. 황급히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와 펜을 찾았다. 친구들은 일찌감치 사인을 받고 악수까지 한 터였다. 공연 내내 울어 퉁퉁 부은 눈을 멋쩍게 비비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인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내 이름을 사인 밑에 써 달라고 했다. 나에게 미소를 한번 짓고는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쑥스럽게 대답한 후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확인하던 그는 웃으면서 갑자기 내 왼쪽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고 숨이 멎었다. 친구들 역시 이 상황에 몹시 당황해했다.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더듬더듬 분장실 밖으로 나갔지만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두 번째 그의 공연이 끝나기까지 우리는 공연장 주변을 어둠과 함께 어슬렁거렸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친구가 교실로 찾아왔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펼쳐진 잡지를 건넸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뭔가?’라는 질문에 ‘대구에 갔는데 단발머리 여고생이 나를 보자마자 울더라. 그래서 손등에 키스를 해주었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친구는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서둘러 인사를 건네곤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학교는 물론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다음 해는 고3 수험생 생활로 몹시 힘들었다. 그가 대구에 공연을 왔지만 가지 않았다. 11월 예비고사 시험 후, 열성 팬이었던 친구들은 가요 프로그램을 방청하러 서울로 올라가 그를 직접 다시 만났다. 나의 안부를 묻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집으로 전화가 왔다. 유명인에게 전화를 받은 남동생은 얼굴이 상기되어 나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얼마 뒤 대구에서 또 그의 공연이 있었다. 그때는 분장실 앞에서 내 이름만 대고 바로 그 가수를 만날 수 있었다. 한동안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쭐했었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일 때 그는 결혼했다. 그리고 내가 정신없이 직장생활을 할 즈음에 아내와 헤어졌다. 그의 인기만큼이나 매스컴은 온통 그의 이야기뿐이었다. 사생활이야 어떠하든 나는 항상 그의 편이었다. 한번 팬은 영원한 팬이니까. 그저 그의 마음이 덜 힘들기만을 바랐다. 그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이었고 그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었다.  

그 이후로도 그의 공연장을 이따금 찾았다. 수십만 명의 관객 중 한 명으로 목소리가 쉬도록 노래를 따라 불렀고 지천명의 나이에도 무지개색 형광봉을 팔이 저리도록 흔들었다. 매번 나의 군더더기는 날아가고 순수한 본질만 남는 그런 경험이었다. 십 대 그 소녀의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었다.


그의 팬으로서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되돌아본다. 내 삶의 기쁨을 배가 되게 해 주었고 슬픔은 반으로 줄여주었다. 또 어떤 때는 누구도 해주지 못한 위로를 내게 건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었다. 유명인의 팬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의 삶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용필 오빠, 잘 지내시죠? 그대가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Si vales bene, va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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