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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Apr 02. 2023

길고양이 집사 이야기

옆집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그 집에서 보살피던 길고양이 세 마리가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어쩔 수 없이 하루 두 번씩 그들의 끼니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겁쟁이, 카리스마, 노랑이라고 그들의 이름까지 정했다. 순진한 집사는 공부까지 해가면서 보살폈다. 그러나 고양이들은 집사를 여기저기 할퀴고 집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툇마루의 가구와 대나무 의자는 고양이들의 스크래쳐 또는 침실이 되었다. 그들의 배설 습관을 몰랐던 집사는 훼손된 텃밭의 수확이 반으로 줄어드는 고통도 참아냈다. 겨울로 들어서면서 고양이 집을 사들이고 집사는 매우 흐뭇해했다. 군대용으로 쓰는 옥스퍼드 천 소재라 보온성이 뛰어나고 강력한 방수가 특징이라며 아내를 설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단 이틀 만에 고양이들로 그 집이 내려앉게 되면서 집사의 마음은 조금 멍들었다.

 

다음 해 봄, 암컷인 겁쟁이와 카리스마가 각각 새끼를 가져 배가 불러오더니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홀쭉해져 다시 밥 달라고 툇마루에 와서 울기 전까지 집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끼니를 해결하고는 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한 달가량이나 되었을까? 오른쪽 창고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남편이 가보더니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슬프게도 집사가 신경 써야 할 일이 또 생긴 것이다. 한 번씩 손님들이 방문하면 고양이는 새끼를 물고 과수원 쪽으로 피신을 가곤 했다. 마침내 옆집의 공사가 끝나도 고양이들은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여름이 가까워져 오던 어느 날, 카리스마가 정확히 짧은 꼬리, 중간 꼬리, 긴 꼬리를 따로따로 가진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당당히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또 며칠 뒤 창고 쪽에서 새끼를 보살피던 겁쟁이 역시 노란색 무늬가 있는 작은 고양이 세 마리를 데려왔다. 그들의 집사에게 어떻게 할 거냐며 거의 울부짖다시피 소리를 질러댔다. 얼마 뒤 여주의 한 지인이 길고양이 여덟 마리를 보살핀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한동안 우울했던 아내의 마음이 좀 풀렸다.

 

현재 우리 집에 거의 살다시피 하는 고양이는 여섯 마리이다. 어미였던 겁쟁이와 카리스마는 새끼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밥때만 왔다가 바로 사라진다. 어린 고양이였던 여섯 마리는 서로 장난을 치고 먹이도 함께 먹으며 찌그러지고 색깔이 바랜 그 고양이 집에서 함께 산다. 고기나 문어를 나눠주는 집사의 선행에도 여전히 며칠마다 한 번씩 아내의 비명은 이웃으로 퍼져 나간다. 작은 쥐나 두더지, 심지어 새까지도 잡아서 툇마루에 올려놓기를 반복하니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들의 본성이 사냥인데 오히려 아파트에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반려 고양이들이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면서 기쁨을 얻지만, 가끔 버려지는 반려동물의 소식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자연과, 동물, 그리고 이기적인 우리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을 뿐 아니라 솔직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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