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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Apr 15. 2023

빛나는 슬픔, 나의 까미노

2019년 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보는 거 어때?’라고 이미 그곳을 두 번이나 다녀온 지인이 나에게 대뜸 건넨 말이었다. 유기견이었던 백두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생활한 지 3년도 채 되기 전에 갑작스레 하늘로 먼저 떠나보내고 오랫동안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던 터였다.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던 나에게 일어난 조그만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해 여름의 첫 순례길 여정은 일종의 답사 여행이었다. ‘카페 이루냐’의 얘기를 들으며 순례길을 따라 어설픈 발걸음은 시작되었고 용서의 언덕, 여왕의 다리 등 순례길의 유명한 장소뿐 아니라 끊임없이 나타나는 노란색 화살표와 십자가는 나를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채우면서 지속해서 걷게 하였다. 2020년 1월 겨울, 본격적인 순례길 걷기에 도전했다. 물론 백두의 사진과 몇 개의 작은 돌들을 배낭 깊숙이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슬픔과 고통 속에 머물고 있던 나 자신의 변화를 간절히 희망했다.

 우리의 인생과도 같은 순례길 여정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브라질 출신인 베아트리스와의 만남이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세찬 메세타 고원의 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걷고 있을 때 도로 위의 한 바이커가 우리에게 손까지 흔들면서 ‘부엔 까미노‘를 외쳤다. 그때 그녀 역시 자전거와 함께 매서운 바람에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산타클라라 수녀원 숙소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경험은 오랫동안 나를 지탱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백두를 떠나보낸 후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례를 받았고 살아남기 위해 기록한 글들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특별한 치유의 경험은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그 아픔은 남아있지만 모든 것이 신이 주신 선물임을 알고 그저 감사할 뿐이다.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까지 걸어야 할 길이 반이나 남은 것도 감사하다. 또 그렇게 나는 살아갈 것이고 다시 그 길을 걸어갈 소망을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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