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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Apr 24. 2023

달을 데려오다

비행기 날개 끝에 그믐달이 걸렸다.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고개가 아프도록 창밖의 밤하늘만 바라보았다. 엉겁결에 나도향의 ‘그믐달’에서처럼 한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달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보름달만 따지고 보면 불길한 징조를 뜻하는 서양의 정서에 비해 우리에게는 그저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이다. 또한, 달은 예술이나 문학작품에 빠질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슈퍼문이니 블루문이니 하는 용어들이 이제 낯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비록 방아 찍는 토끼의 모습은 아련해졌지만 산 넘어 떠오르는 붉은 보름달이나 초저녁 서쪽 하늘의 초승달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여전히 좋기만 하다.

 

실제 크기로 보면 태양이 달보다 약 400배나 크다. 그런데 이 두 천체가 하늘에서 보이는 크기는 비슷하다. 기가 막힌 우연 중의 우연이다. 게다가 이달이 가끔 태양을 가린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2009년 7월 22일에 일어난 개기일식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직장생활로 바쁜 가운데 천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식여행을 계획했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상하이에서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관건은 날씨였다. 일행의 대표가 전문가로부터 연락받았다며 흐린 날씨를 피해 좀 더 맑은 북쪽 지역으로 가자고 제의했다. 다음날 새벽,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버스에 올랐다. 오전 9시가 넘어가자 다행히 하늘은 맑아지고 있었다. 주차장의 혼잡함으로 아까운 시간을 보냈지만, 관측에는 지장이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장비를 꺼내고 해와 달이 만드는 세기의 걸작품을 지켜봤다. 잇달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던 중 가장 경이로운 순간이 왔다. 달이 해를 99% 가리는 ‘다이아몬드 링’이 나타난 것이다. 일식 중 최고의 감동이었다. 숨이 막혔다. 곧이어 마지막 1%의 빛이 사라지는 순간 온 세상은 캄캄해졌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고음의 소리만 질러댔다. 한편으로는 촬영이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카메라와 하늘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관측에 몰입해 있는 동안 옆의 미국인 부모와 딸은 서로 껴안으며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문화차이라고 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사진 찍느라 바쁜 것이 아니라 가족 서로 간의 사랑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 당시 ‘이 순간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아야지’ 하는 생각밖엔 없었다. 태양이 달에서 벗어나는 동안 그 가족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개기일식 중 최고의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멋진 장면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과 우리는 경이로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달랐다. 금성이 태양의 오른쪽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그 가족이 떠올라 그저 멍하니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 달탐사선 다누리 호가 달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많은 성과가 있을 거라 하니 국민으로서 뿌듯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유인탐사를 목적으로 아르테미스 계획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제 달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각 나라의 이익추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마저 든다.


마음 한편에 있던 나만의 달을 데려와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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