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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Apr 29. 2023

집착의 끈

무소유란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최소주의를 추구한다 해도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든 집착하는 걸 보면 애초에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뭐 나만 그런가. 현대의 많은 사람이 끝없이 소유하고자 욕망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잔OOO 중저가 제품이 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아본 것은 약 20여 년 전이었다. 사람들의 소박한 옷차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그들이 메고 다니는 이 제품의 가방에 마음이 무척 쏠렸다. 단순하고 아날로그적 감성이 맘에 들었다. 먼 나라 땅에서 산 가방을 2년 동안 메고 다녔다. 그 이후 이 상표의 새 제품이 나오면 가방을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길로 다니다가도 그 가방을 메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뒤따라가서 디자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맘에 들면 기어코 그 가방을 샀다. 다른 가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선물용으로 받은 값비싼 가방은 가족들에게 모두 기부했다. 가방 9개를 사고 나서야 좀 시들해졌다.

 

파란색에 집착했다. 학창 시절 내 방 한쪽 벽면을 파란색 색종이로 잔뜩 붙여놓았다. 엄마는 색깔에 집착하는 딸이 걱정되었던지 그 이후로 저녁 공부 간식에 더 신경 쓰셨다. 차고 우울한 색에 집착해서 친구들로부터 ‘멜랑콜리’라고 별명을 듣기도 했다. 그 당시 멜랑콜리는 유행 단어였다. 편한 점도 있었다. 물건을 고를 때 일단 파란색으로 정하고 나면 무엇이든 선택하기가 쉬웠다. 옷, 가방, 지갑뿐 아니라 일상생활용품과 심지어 자동차까지. 사계절 청바지만 고집하는 첫 번째 이유도 색깔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남색이 유행하면서 집착하는 파란색의 범위는 훨씬 넓어졌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매일 흡족한 맛의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온종일 찾아 헤맨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내가 앉는 책상마다 36색 또는 48색 색연필 통이 있다. 한 개라도 안 보이면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한다. 지독한 집착이다. 책상에 앉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색연필 개수를 세는 일이었으니까.

걷기에도 집착했다. 처음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가고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다. 어느새 왕복 2시간 걷기는 일상화되었고 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도 꼭 걸어야만 했다. 무릎 통증이 와도 고집하니 이것 또한 분명 집착이다.

지난 가을에 대한 집착은 도를 넘었다. 두 달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잠도 제대로 못 이루면서 추억 속 가을을 찾아다니고 현재의 가을 속에서 방황했다. 낙엽을 걷어차며 몇 시간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일상생활에 소홀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집착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그 집착으로 유지됐는지도 모른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진정한 자유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집착에서 벗어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살다 보면 우리는 그 집착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늘 추구하는 행복도, 어쩜 우리가 욕망하는 모든 것들이 때로는 고통이었음을 깨닫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필요한 것은 집착의 끈을 서서히 놓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또한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비우고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결국, 언젠가는 모든 끈을 내려놓아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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