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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May 10. 2023

나비의 꿈

고랑에서 버둥거리던 나비가 결국 죽었다. 생명체들로 북적거리는 땅과 하늘을 뒤로한 채, 흙과 공기의 냄새만을 기억하며 외롭게 이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이 반짝거리는 이 봄날에.

 

텃밭을 제대로 시작하고자 이것저것 계획을 세웠다. 절반은 꽃밭으로 가꾸고 나머지 반은 채소를 키우기로 했다. 도심지보다는 기온이 낮고 불확실한 날씨 때문에 산 근처 텃밭 가꾸기에 실패가 많았다. 지난해는 모종을 심고 이틀 뒤 고라니가 어린순들을 다 먹어 치운 아픔도 있었다. 고추와 토마토 등 여러 모종으로 채소밭을 채웠고 꽃밭에는 버베나, 후쿠샤 등 꽃집에서 사 온 예쁜 꽃들과 함께 야생화 씨를 뿌렸다.

 

텃밭에서 부추와 들깨 모종이 어지럽게 섞여 있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옆집에서도 정원을 가꾸느라 작은 소음이 들렸고 자작나무가 봄바람에 바스락거려서 처음에는 지나쳤다. 계속 소리가 나 고개를 돌려보니 호랑나비 한 마리가 고랑에서 날개를 펄럭거리고 있었다. 어제 봤던 호랑나비였다. 따듯한 날씨였지만 올해 들어 나비를 처음 봤기에 ‘아직 나비가 나올 때가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바로 그 나비였다. 그런데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된 오른쪽 날개 일부가 찢겨 있었다. 어떡하나. 나비를 날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더는 텃밭에 있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오후에 다시 가 보았다. 나비는 힘이 약간 빠진 상태로 날려고 애쓰는 듯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긴장된 마음으로 나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나비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었던 나 자신과 고통스럽게 죽어간 나비 생각으로 마음이 우울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애벌레가 되어 몇 번의 탈피를 하고 인내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자유롭게 날았을 나비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수명이 다 되어 떠났는지 다쳐서 떠났는지 그 이유야 어떠하든 짧게 살고 간 나비의 삶이 가여웠다. 성호를 긋고 얼마 전에 산 백합 모종 옆에 묻어주었다.

 

전원에 살면서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죽음을 경험하는 일이다. 마당에서 매미, 사마귀, 새, 심지어 어린 길고양이까지 여러 동물의 죽음을 겪었다.

새 한 마리가 고양이에게 습격당해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일이 기억난다. 날지 못하고 마당에서 퍼덕거리는 것을 구조해 살리고자 애썼다. 할 수 있는 일은 안전한 공간에서 물과 먹이를 주고 기적적으로 회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뒤숭숭한 마음에 밤새 잠도 이루지 못했지만, 아침이 되어 새를 산에 묻어주러 가는 발걸음은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뿐 아니라 인간도 언젠가는 죽는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에 읽은 소설 ‘스토너’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죽어가면서 자신에게 세 번이나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생의 마지막에서 스스로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행운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열심히 살아왔지만 몇 가지 후회도 떠올린다. ‘누구나 생의 마지막에서 후회는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라면 조금은 진지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허무가 아닌 인생을 충만하게 살라는 긍정의 메시지,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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