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경쟁의 장으로 변했다. 가냘프게 몇 년을 버텨온 장미는 긴 병풀꽃으로 덮였다. 옆으로 번진 딸기는 무스카리와 오이밭까지 존재의 영역을 넓혔다. 갈대 역시 여기저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줄기가 뻗어 나왔다. 그런데 나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긴 병풀꽃이나 갈대가 아니라 바로 들깨였다. 심지도 않았는데 몇 그루 나더니 올해는 여기저기 텃밭의 절반을 점령했다. 과도한 잡초 제거는 지양하고 꽃들과 채소가 함께 자라는 자연 정원을 기대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장미뿐만 아니었다. 달맞이꽃 역시 어성초에 가려 겨우 몇 그루만 꽃을 피웠다. 옆 칸에는 이름 모를 넝쿨 식물이 50cm가량 되는 도라지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복수박 모종은 온갖 정성에도 세 그루 모두 생을 마감했다.
마음껏 꽃을 피우고 싶었을 장미, 영역을 지키고자 했던 무스카리, 고고하게 자신을 지탱하고자 했던 도라지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생물의 다양성이 보존되는 친환경 텃밭은커녕 오히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었다. 공존의 장이 아니라 강자 생존의 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박하 옆에 꽃잔디를 심었던 기억이 났다. 보이지 않았다. 무성하게 자란 박하만이 사방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작은 숲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쪼그리고 앉아 부랴부랴 박하를 헤집고 안을 들여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손바닥 2개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햇빛도 들지 않은 그늘 속에서 죽은 줄기에 엉켜 가까스로 삶을 버티고 있었다. 욕망의 전쟁을 치르는 바깥세상과는 달리 힘없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치 안전한 장소인 케렌시아(Querencia) 속에 있는 듯했다. 아니,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받은 상처 치유를 위해 고요히 고개 숙여 한없이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
몇 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상실의 고통 때문에 어두운 터널에 주저앉아 있던 바로 그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무심히 돌아가고 슬픔과 함께 피난처 속에 꼭꼭 숨어 있었다. 그 어떤 위로도 되지 않던 시절, 그저 견뎌야만 했다.
마음이 아팠다. 관리를 제대로 못 한 내 책임이 컸다. 가위로 박하의 욕망을 과감히 자르고 꽃잔디의 마른 줄기를 조심스럽게 걷어내었다. 그늘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초록의 가는 잎들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 시간을. 안타까움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이제 마음껏 바람과 햇빛, 그리고 자유를 누리길 바랐다. 시간을 견뎌온 인내만큼이나 찬란하게 꽃 피우길 기도했다. 인간을 바라보는 신의 마음처럼 한동안 그렇게 텃밭을 바라보았다.
쇼펜하우어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 그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쩜 삶 자체가 욕망을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돈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욕망 대부분은 세속적이다. 채우면 채울수록 일시적 만족 뒤의 공허감도 커진다. 말 그대로 욕망의 아이러니다.
누구나 욕망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삶은 쉽지 않다. 하지만 타인을 배려하면서 욕망을 추구할 순 없을까. 언제부턴가 개인의 자유만 있고 책임은 사라진 세상이 된 것 같다. ‘아니면 말고’라는 유행어가 생길 만큼 각박한 세상이다. 삶을 위해 경쟁만 한다면 결국 서로가 상처 입고 각자는 더욱 외로워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을 위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기에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상처와 고통으로 자신만의 피난처에서 웅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함께 보듬어가는 세상을 위해 각자의 자유를 좀 더 너그럽게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케렌시아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타인에게 진심 어린 손을 내밀기 위해서라도.